고시원은 '간이스프링클러 의무화'…여관은 제도 개선 없어
"'방화'라는 점에만 이목 쏠려…시설종류 관계없이 화재대비책 나와야"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성매매 여성을 불러주지 않는다며 여관에 불을 질러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 '서울장여관 참사'가 벌어진 지 20일로 1년을 맞는다.
이 여관은 연면적과 건물 용도상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파악되면서 이른바 '주거 취약계층'의 안전을 두고 우려가 쏟아졌지만, 사건 이후로도 별달리 개선된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장여관 방화는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중국음식점 배달원 유모(54) 씨가 출입구에 휘발유 통을 던지고 불을 지른 사건이다. 유씨는 여관 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근처에서 휘발유를 사서 불을 놓았다.
이 불로 건물에 있던 10명 중 세 모녀를 포함한 7명이 숨졌고,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인화성 물질로 저지른 방화라는 점 외에도 낡고 열악한 시설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면적 103.34㎡의 지상 2층짜리 여관 건물은 1964년 사용승인이 나 사건 당시 지은 지 54년이 지난 상태였다. 건물 용도와 연면적 중 어떤 기준으로도 의무 설치 기준에 못 미쳐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후문은 투숙객이 찾기 어려운 곳에 있어 평소 거의 쓰이지 않았고, 옥상도 대피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유씨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1년이 지났지만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이 화재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는 현실은 그대로다.
같은 해 11월 9일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투숙객이 사용하던 전열기에서 난 불이 번져 7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주거권네트워크와 민달팽이유니온, 빈곤사회연대 등 단체들은 서울장여관 방화 사건과 '판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상자 대부분이 빈곤층 또는 일용직 노동자였고, 화재에 취약한 낡은 건물로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가 더 컸다는 점 등이 두 화재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사고 이후 정부가 안전 대책을 내놓은 고시원과 달리 여관은 아직도 대책 없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소방청은 지난해 말 '제3차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국일고시원 화재를 계기로 향후 고시원과 산후조리원에도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를 낡은 시설에도 소급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본계획에는 낡고 오래된 소규모 여관에 스프링클러 같은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장여관 사건은 건물의 화재 취약성 때문에 피해가 커졌는데도 방화라는 점 때문에 유씨의 범행에만 이목이 쏠리고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사람이 상시 거주하고 숙박하는 시설이라면 종류와 관계없이 화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ae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