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는 말레이시아 전임 총리가 뮤직비디오에까지 나와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24일 말레이시안 인사이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22일 4분 28초 길이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해 공개했다.
이 영상물은 나집 전 총리가 지지자 10여명과 함께 흑인 보컬 그룹 맨해튼스의 명곡 '키스 앤 세이 굿바이(Kiss and Say Goodbye)'를 부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나집 전 총리는 이 곡의 도입부 내래이션에서 "(총선이 치러진) 2018년 5월 9일 나는 (총리직에서) 쫓겨났다. 내 생애에 가장 슬픈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오랫동안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분투해왔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자신이 현 여당연합 희망연대(PH)의 중상모략과 정치보복에 당한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매체는 나집 전 총리가 부른 노래의 가사도 "산처럼 높았던 희망은 부서져 먼지가 됐다. 난 당신이 약속한 모든 것을 믿었다" 등 현 정부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었다고 전했다.
나집 전 총리는 경제개발 사업을 하겠다며 2009년 설립한 국영투자기업 1MDB를 통해 수조 원대의 나랏돈을 빼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는 2015년 말 1MDB가 13조원에 육박하는 부채를 떠안은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자금이 횡령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수사를 방해했다.
이에 분노한 말레이시아 국민은 작년 5월 총선에서 야권에 몰표를 던져 나집 전 총리를 권좌에서 몰아냈다.
결국, 나집 전 총리는 배임과 반부패법 위반, 자금세탁 등 39건의 혐의로 기소돼 내달부터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잠수함 도입사업 리베이트 스캔들을 폭로하려다 2006년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몽골 출신 여성 모델 알탄투야 샤리이부(당시 28세) 사건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집 전 총리는 자신에게 걸린 혐의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전통적 지지세력인 말레이계 국민의 지지를 되찾으려 시도해 왔다.
그는 뮤직비디오를 찍게 된 계기를 묻는 말에 "(소속 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당원들의 요구였다"면서 "그들은 과거 우리가 해낸 많은 좋은 일들에 향수를 느끼고 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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