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협의중단 발표로 봉합 양상 보이다 위협비행으로 확전 급선회
軍, 도발 계속되면 강력대응 방침…위협비행 동영상 공개 검토
전문가들 "일본에 따질 것 따지되 이성적으로 오해해소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일본이 자국 해상초계기를 향한 한국 함정의 화기관제(사격통제) 레이더 가동을 주장하며 불거진 한일 해상갈등이 일본 초계기의 우리 함정을 향한 위협비행으로 초점이 바뀌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가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3일까지 4차례나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저공으로 근접 위협비행을 감행한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레이더-위협비행 갈등' 관련 한일 협의중단 발표(21일)로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한일 해상갈등은 확전 국면으로 급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군은 일본 초계기가 지속적으로 우리 함정을 향해 위협비행을 하면 함정이 보유한 모든 탐지장비와 무기체계를 동원해 강력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한일 해상갈등은 지난달 20일 우리 해군 구축함(광개토대왕함)이 동해상에서 북한 어선 구조작전을 하던 중 일본 초계기(P-1)가 접근하면서 불거졌다.
일본 방위성이 다음 날 한국의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에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했다고 주장하자, 우리 국방부는 즉각 레이더 조사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국방부는 오히려 일본의 초계기가 낮은 고도로 위협 비행을 했으니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달 28일 자국 초계기가 촬영한 당시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한일 갈등을 키웠다. 일본어와 영어로 제작된 이 동영상에는 광개토대왕함이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다는 일본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 담겼다.
이에 우리 국방부도 우리 해군 함정이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위협비행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영어, 중국어, 일본 등 6개국 언어로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양국의 갈등이 국제선전전으로 비화한 셈이다.
양국은 레이더-위협비행 갈등을 풀기 위해 지난달 27일과 이달 14일 두 차례 화상 및 대면 협의를 가졌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우리 측은 일본이 레이더 조사 사실을 입증하려면 초계기가 탐지한 정확한 레이더 주파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끝내 정확한 주파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지난 21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자파 접촉음만 공개하면서 한일 간 협의중단을 선언했다.
일본의 협의중단 선언을 계기로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한일 군사갈등은 23일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을 향해 노골적으로 저공 위협비행을 하면서 다시 격화했다.
일본 P-3 초계기는 의도적으로 우리 대조영함 쪽으로 다가와 수 분간 선회비행을 하면서 비행고도 60~70m로 540m까지 접근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24일 "우리 해상초계기는 지금까지 함정과의 거리 3노티컬마일(5.6㎞) 이상을 준수하고 있다"며 "함정에 비해 속도가 훨씬 빠른 군용기는 함정과의 거리와 고도를 지켜줘야 한다. 일본의 행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군은 우선 일본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알리는 차원에서 우리 대조영함에서 촬영된 일본 초계기의 저고도 위협비행 영상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일본 초계기가 계속 우리 함정을 향해 저공 위협비행을 하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행위이므로 일본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또 다시 이런 행위가 반복될 경우, 우리 군의 대응행동수칙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서 본부장이 언급한 대응행동수칙과 관련 "구체적인 조치는 작전사항이라서 명확히 말할 수 없다"면서도 "함정에 있는 모든 탐지장비와 무기체계를 활용해 대응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레이더 조사와 경고사격도 (대응조치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우리 군은 지난달 20일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 상공 150m로 위협 비행한 이후 자위권적 조치의 대응행동수칙을 보완했다. 이 수칙은 경고통신→사격통제레이더(STIR-180) 가동→ 경고사격 포함 무기체계 가동 등의 순으로 대응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군사 분야'의 양국 갈등이 국민감정 싸움으로 비화할 경우 앞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호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또 갈등 격화가 한일, 한미일 차원에서 필요한 대북 공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일간 갈등이 더 악화하면 북핵 및 미사일 관련 정보 공유 등을 위해 체결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연장 논의도 국익보다는 국민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존재한다.
김진형 전 합참 전략기획부장(예비역 해군소장)은 "일본이 동해와 이어도 근해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독도 영유권 주장과 해양영토 확장과 결부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베 정권의 해양영토 확장 의지 속에 자국민이 한국을 그 방해 세력으로 간주하게끔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진단했다.
김 전 부장은 "이번에 일본과 갈등을 빚은 동해와 남해에서의 우리 군함 활동은 우리 작전해역 안에서 이뤄진 정당한 '영역관리 활동'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일본에는 한일협의 채널을 통해 '양국간 신뢰관계를 말하면서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대 박휘락 교수는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냐 '적'이냐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며 "북한 핵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유사시 (유엔사 후방기지로서의) 일본 역할이 존재하는 만큼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상호 오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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