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형 건조시설·장비 앞다퉈 도입, 기계 건조량 60% 넘어
당국도 예산지원 확대…"쫄깃한 식감 잃는다" 우려 목소리
(영동=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영동 심천면에서 30여년 넘게 곶감을 생산하는 A(58)씨는 몇 해 전 외부 공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곶감 건조장을 새로 지었다.
사방에 개폐 가능한 차단막이 설치돼 날씨가 좋을 때는 문을 활짝 열어 통풍시키고, 야간이나 미세먼지가 많으면 문을 닫아 바깥 공기 유입을 막는 구조다.
2층짜리 건조장(130㎡)을 짓고, 온도·습도 조절장치를 갖추는 데 1억5천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투자했다.
예로부터 곶감은 처마 밑에 줄줄이 매달아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고 여겨졌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반복할수록 달고 쫀득거리는 맛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기업형 곶감 생산 농가들도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재래식 건조장을 갖춘 뒤 같은 방법으로 곶감을 매달아 말렸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겨울 날씨가 포근해지고, 하루가 멀다고 미세먼지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이런 방식의 곶감 생산이 어려워졌다.
소비자들의 눈과 입이 깐깐해지면서 이렇게 말린 곶감은 이제 시장에서 찬밥 취급을 받는다.
영동읍에서 한 해 5천접(1접=100개)의 곶감을 생산하는 B(63)씨 역시 지난 3∼4년 새 대당 1천만원이 넘는 곶감 건조기 15대를 새로 들였다.
생감을 깎아 넣어 3∼4일이면 말랑말랑한 '반건시'(半乾枾)가 되고, 하루 이틀 더 말리면 '건시'를 만들어내는 기계다.
그는 4년 전 고온다습한 겨울 날씨 때문에 건조장에 내건 감의 절반 이상이 썩거나 물러지는 피해를 봤다.
이후 미세먼지까지 날아들면서 자연건조 대신 기계식 건조 곶감 생산량을 늘려가는 중이다. 그는 이번 겨울 전체 생산량의 60%가량을 기계에 넣어 생산했다.
그러나 기계로 말린 곶감은 떫은맛이 돌고, 쫀득한 식감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농가마다 반건시 상태의 곶감을 빼내 후숙(숙성)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B씨는 "쫀득거리는 식감은 자연건조 곶감을 따라갈 수 없지만,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어 기계 건조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은 경북 상주·청도, 경남 산청 등과 함께 손꼽히는 곶감 주산지다.
지난해 기준 2천300여곳의 농가에서 3천920t의 곶감을 생산해 전국의 6%, 충북의 84%를 차지했다.
그러나 포근해진 날씨와 미세먼지 때문에 처마 밑에서 말린 재래식 곶감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계가 보급되면서 종전 30∼40일 걸리던 곶감 건조 기간도 10분의 1로 줄었다.
군 관계자는 "인력난이 심해진 것도 농가 입장에서 긴 시간이 걸리는 건조장 대신 기계를 선호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수월해진 곶감 생산 방식이 소비자 외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영동 곶감 생산자협회 관계자는 "기계로 말린 감은 겉은 꼬들꼬들해도 속은 홍시 형태로 남는 경우가 많다"며 "후숙 과정을 거치더라도 본래의 곶감 맛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동군은 이상고온으로 곶감 농가 피해가 컸던 2015년 이후 곶감 생산시설 현대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건조장 27곳에 차단막을 설치해줬고, 건조기 464대와 제습기·열풍기 217대를 보급했다.
군은 올해도 산림소득보존사업비 20억원 중 일부를 곶감 생산시설 현대화에 투입할 예정이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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