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마두로 퇴진 앞장서자 中·러 '내정간섭' 주장…동서 '파워게임' 양상
중남미도 좌우로 갈려 찬반 표시…구테흐스 유엔총장 "대화로 해결해야"
홍콩 언론 "중국, 막대한 투자 수포로 돌아갈 것 우려해 마두로 지지"
(서울·홍콩=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안승섭 특파원 =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거취를 둘러싼 정국 혼란이 국제사회의 '좌우 대립' 구도로 번지고 있다.
미국과 EU, 그리고 브라질을 비롯해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미주 대륙의 우파 정부들이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하면서 '반(反) 마두로 포위 전선'을 구축한 반면, 쿠바와 볼리비아 등 좌파 국가들은 '마두로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여기에 베네수엘라의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 중국이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고 이번 사태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고 나서면서 동서간 '파워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진 23일(현지시간) 미주 대륙에서는 저마다 좌우로 나뉘어 마두로 정권에 대한 찬반 의사를 나타냈다.
기세를 올린 쪽은 미국을 위시한 우파 국가들이다. 한때 중남미 대륙을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의 퇴조에 따라 우파 정부들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대통령..."미국정부와 정치·외교 관계 단절"/ 연합뉴스 (Yonhapnew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 "나는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베네수엘라 국회가 헌법을 발동해 마두로 대통령이 불법이라고 선언했고 따라서 대통령직은 공석"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역시 성명을 통해 "미국은 과이도를 베네수엘라의 새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하며 베네수엘라 헌법 제233조에 따른 역할을 맡겠다는 그의 용감한 결정을 강력히 지지한다"라며 힘을 보탰다.
최근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남미 최대국가 브라질도 뒤를 따랐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참석을 위해 스위스 다보스를 방문 중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촉구했고, 브라질 외교부도 성명을 내 과이도 의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했다.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페루, 파라과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우파 정부는 물론 북미의 캐나다 역시 잇따라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며 마두로 정권을 압박했다.
여기에 유럽연합(EU)도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발표한 성명을 통해 사실상 과이도 의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하면서 조속한 재선거를 촉구, '반 마두로 전선'에 동참했다.
위세가 크게 줄긴 했지만 중남미 좌파 블록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베네수엘라의 오랜 좌파 동맹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트위터에 "제국주의의 발톱이 남미의 자결권과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려 하는 중요한 시기에 베네수엘라 국민과 형제인 마두로 대통령에게 우리의 연대감을 표한다"고 적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트위터를 통해 "'볼리바르 혁명'을 흔들고 무력화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시도에 맞선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지지와 연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작년 말 좌파 정권으로 바뀐 멕시코는 외교적으로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헌법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인정한다"는 입장으로 마두로 정권을 사실상 지지하고 나섰다.
역내에서 뚜렷한 열세인 '친(親) 마두로' 좌파 진영에 든든한 지원군이 된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우리는 베네수엘라 정권 찬탈 시도를 국제법 기초와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며 외부 개입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자임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인정한 것은 워싱턴이 베네수엘라 위기에 직접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는 내정간섭이며 마두로를 권력에서 몰아내려는 명백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무역 갈등으로 미국과 껄끄러운 중국도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독립과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을 안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며 동시에 외부 세력이 베네수엘라 내정을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상호 존중과 내정 불간섭이라는 기초 아래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을 촉구하면서 마두로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지지한 배경에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중국의 막대한 투자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막대한 원유 매장량 등에 이끌려 베네수엘라에 차관과 기술, 인력을 제공하면서 투자를 확대해왔다. 중국이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차관과 민간대출 등은 500억 달러(약 5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75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 건설사업과 곳곳의 공장 등 중국이 투자한 대부분의 베네수엘라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SCMP는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정권이 바뀔 경우 새 정권이 중국과의 계약을 존중하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며 "하지만 미국과 무역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마두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으며, 시 주석은 경제난에 빠진 베네수엘라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마두로 대통령은 중국에서 50억 달러의 추가 신용한도를 확보하는 등 여러 협약을 체결했다.
한편,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찾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악화일로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를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다보스포럼 기조연설에 앞서 베네수엘라 사태를 언급하며 "대화는 가능하다. 베네수엘라인과 남미에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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