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에는 인구·경제구조 요인도 작용…중장기 일관된 대응 필요"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반도체 시장이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구매 지연, PC 생산 감소 등 반도체 수요 둔화 요인이 하반기에 점차 해소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한국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 하락은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이는 요인이 된다"면서 "그러나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 회복한다는 전망이 우세하기에 경상 흑자는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이 총재와 일문일답.
-- 작년 11월 금통위에서 '경기 하강국면이라는 표현은 하기 조심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세계 경제가 둔화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국 경기 전망도 어두워졌다.
▲ 경기 정점이 정해지고 나서 그 이후에야 '하강국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재까지 통계청은 공식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경기 정점이나 저점은 각종 경기지표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검토, 전문가 의견 수렴 등 여러 절차를 거쳐서 신중하게 판단하게 돼 있다.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 성장세 약화 징후가 나타나기에 국내 경제도 성장세가 둔화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우려하는 급격한 경기둔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고 지난해 수준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 반도체 수출 감소가 일어나면서 경기 조정 국면이 현실화하는 것 같다.
▲ 다수 전문기관이 최근 반도체 시장 조정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다 보니 수요처에서 전략적으로 구매를 지연하거나, PC 생산이 감소하는 영향으로 수요가 둔화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요인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반도체 수요가 다시 증가해 회복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반도체 경기가 본격 둔화 국면에 진입한다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어 늘 주시해야 한다.
-- 경제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 못 미친다. 그런데도 앞으로 통화완화 기조로 더 갈 수 있나.
▲ 세계 경제 성장세 약화를 반영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해와 비슷한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본다. 통화정책은 지금도 완화적이고 더 완화적으로 가는 것을 고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낮췄으나 국제유가 하락 등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물가상승률이 1%대 초반으로 낮아졌지만 점차 높아져서 하반기에는 1%대 중반으로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 수출이 증가세라고 하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마이너스다. 수출 증가세라는 표현이 어떤 기준인지 명확하게 설명해달라.
-- 금액 기준 수출은 작년 12월에 감소했고 올해 1월 들어서도 반도체 가격 하락과 작년 1월 대비 기저효과로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그러나 물량 기준으로는 견조한 증가세를 보인다.
▲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이 돼야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나?
--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을 2년 전에 2.8∼2.9%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추세가 하락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는 2.6∼2.7% 정도가 되겠다. 잠재성장률 추정이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특정 수치가 아닌 범위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 경제 구조와 인구 구조, 생산성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정하기에 해가 갈수록 변한다. 일반적으로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선진화할수록 잠재성장률 수준이 낮아진다.
▲ 반도체 가격 조정으로 수출 둔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지난해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는데도 한국은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해서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이 근거 중 하나가 경상수지 흑자다. 그래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무너진다면 분명 우려가 있다.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 하락은 흑자 폭을 줄이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경기가 하반기에 회복한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도 국제유가가 지난해보다 상당히 하락해 있는 점이 경상 흑자를 더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공시지가 현실화를 시사했다. 부동산가격 하락이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주택가격 변동이 소비에 미치는 자산효과는 과거보다는 작아졌다. 자산효과가 작은 고령층의 주택소유 비중이 확대되고 자산효과가 큰 중장년층 비중이 축소됐다. 주택가격 안정은 무주택 가격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해 소비 여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주택가격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하락한다면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주택가격이 안정된다면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누적을 억지할 수도 있다.
▲ 올해 국고채 발행이 다시 늘어났고, 기준금리를 인상했는데도 국채 수익률 곡선이 좁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처럼 수익률 곡선 관리에 나설 수 있나.
-- 11월 기준금리 인상 후 장단기 금리 차가 좁아진 것은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 기대를 선반영한 측면이 있다. 11월 중에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양상을 보이면서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크게 하락한 영향도 있다. 한은도 수익률 곡선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늘 분석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 작년 기준금리 인상 당시 소수의견이 유출됐다는 의혹이 있다.
-- 한은법에서는 업무상 취득한 정보에 대한 임직원 비밀유지 의무를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한은은 조직 차원에서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직원 개개인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 규정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현재로서는 통화정책 결정 관련 내용이 사전 유출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경각심을 갖고 있다.
▲ 시장에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경기 인식이 안 좋다. 한은과 시장의 인식 차이가 어떻게 나오나.
-- 시장과 정부 당국자 간의 괴리는 미국에서도 제기된다. '실물과 금융의 괴리'라고 표현한다. 미국 경제의 실물은 견조한데도 금융시장에서는 경기둔화 우려를 높게 보고 그것이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지난주 국제결제은행(BIS)에서도 논의했는데 시장이 조금 과하게 반응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다수였다. 시장은 불안 요인을 늘 선반영하려 하고 때에 따라서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 새 잔액 기준 코픽스(COFIX)금리가 도입되면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상쇄된다는 분석이 있다. 금융당국과 한은이 부조화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 현재로서는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약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잔액 기준 코픽스 대출 비중이 10%대로 낮아졌다. 가계부채 대응에 있어서 기관 간 부조화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금융당국도 가계부채 안정 의지를 갖고 있고, 이번 조정은 소비자 보호 차원으로 이해한다.
▲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한국 가계대출 증가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봤다.
-- 작년 11월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도 가계부채를 고려했다. 국내총생산(GDP) 및 가처분소득과 비교하더라도 총량 수준과 증가속도가 모두 높다. 특히 가계부채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적 유지나 대외 평판에 부담이 되는 수준까지 누적돼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가계부채가 누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 다만 가계부채에 인구 구조 변화도 있고 한국 가계의 실물자산 보유 성향이 높다는 경제 구조적 요인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일관된 대응 노력이 요구된다.
▲ 작년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는데 체감을 못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성장과 관련해서 국민 체감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고용으로 본다. 고용 개선과 임금 개선이다. 결국 체감은 개인 입장에서는 소득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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