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가열로 25일로 투표 미뤄…파르테논 신전 옆엔 '반대 현수막'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 의회가 이웃나라 마케도니아와의 국호 변경 합의안을 발효하기 위한 의회 표결을 하루 연기했다.
그리스 의회는 합의안에 대한 토론이 가열돼 발언을 신청하는 의원들이 쇄도함에 따라 당초 24일 밤 열릴 예정이던 투표를 25일로 하루 미룬다고 밝혔다.
니코스 부치스 그리스 의회 의장은 이날 오후 국영 TV에 출연해 "현재까지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205명이 발언을 마쳤다"며 토론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까닭에 불가피하게 표결을 연기한다고 설명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조란 자에브 마케도니아 총리는 작년 6월 마케도니아가 이름을 '북마케도니아'로 고치는 대신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안에 서명한 바 있다.
마케도니아 의회가 국호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안을 비준하는 등 관련 절차를 마무리함에 따라, 공을 넘겨받은 그리스 의회는 지난 23일부터 합의안 비준을 둘러싼 토론에 착수했다.
이 합의안은 양국 모두에서 거센 반발에 부닥쳤으나, EU와 나토 가입이라는 명분에 힘이 실린 덕분에 마케도니아 의회에서 먼저 헌법 개정안을 간발의 차로 승인했다.
그리스에서는 연립정부의 한 축인 우파 그리스독립당을 이끄는 파노스 카네노스 국방부 장관이 합의안에 대한 반대로 지난 13일 전격 사퇴했고, 이에 따라 연정이 붕괴해 치프라스 총리가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자 치프라스 총리는 위기 돌파를 위해 불신임 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과반 의석보다 1석 많은 151표로 불신임 투표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당시 투표 결과로 미뤄볼 때 마케도니아와의 합의안 역시 아슬아슬하게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의회 표결을 앞두고 반발 시위가 격화하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이날도 합의안을 둘러싼 토론이 진행되는 의회 의사당 등 아테네 도심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열려, 경찰이 삼엄한 경계에 나섰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아테네 시가지를 굽어보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앞에는 양국의 합의안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20m짜리 초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테네에서는 주말인 지난 20일, 양국의 합의안에 반대하는 약 10만 명의 인파가 대규모 시위에 나선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가 곤봉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 하고, 경찰은 이에 최루탄을 터뜨리며 진압에 나서는 등 양측이 정면 충돌, 합의안 표결을 앞두고 험악해진 여론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한편, 마케도니아를 구(舊)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공화국(FYROM)의 약자를 따 'FYROM'으로 칭하고 있는 그리스는 1991년 옛 유고 연방에서 마케도니아가 독립한 뒤 국호 문제로 30년 가까이 서로 대립해왔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이 알렉산더 대왕의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 중심지였던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자,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자부심이 큰 그리스의 역사와 유산을 도용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이웃 나라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여론조사 결과 양국의 합의안에는 그리스 국민의 약 7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 국민 상당수는 테살로니키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북부 주의 이름이자, 그리스의 정체성의 핵심인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이웃 나라의 새로운 국호에 포함되는 이상 양국의 합의안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합의안을 강력히 지지해온 EU를 비롯한 서방은 마케도니아에 이어 그리스 의회도 합의안을 비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합의안이 발효되면, 약 30년에 걸친 양국의 해묵은 갈등이 해소돼 발칸반도의 안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나토 가입이 실현돼 이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러시아의 계획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있다는 게 서방의 기대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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