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간 '죽사'가 일군 추상…전국서 이응노 회고전

입력 2019-01-26 08:30  

파리로 간 '죽사'가 일군 추상…전국서 이응노 회고전
인사아트센터·이응노미술관·이응노의집서 도불60년·작고30년 기념전
문자추상·군상 작업 외에 아내 박인경 작품도 소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대나무 그림에 탁월해 '죽사'(竹史)로 불리던 동양화가 이응노가 유럽으로 건너간 때가 1958년이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됐다는 소식이 쉰넷 늦깎이 유학을 결심하는 데 큰 동력이 됐다.
독일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한 이응노는 서양 현대미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전통 한국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은 곧 파리 화단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국내에서는 질곡 많은 현대사와 얽혀 오랫동안 '금기작가'였지만, 1989년 호암미술관 회고전을 시작으로 재평가받았다. 이제는 백남준, 김환기, 이우환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이응노 도불 60년, 작고 30년을 기념해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국내 각지에서 열린다. 2017년 퐁피두센터 '이응노 기증' 전, 세르누쉬 미술관 '군상의 남자, 이응노' 전시와 호응하는 행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원초적 조형본능'은 1960∼1970년대 '문자추상' 작업을 중심으로 70여점을 선보인다. 말년작 '군상'을 집중 소개한 작년 봄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시의 후속이다.
이응노는 1960년대 파리 화단에서 유행하던 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폐자재에 수묵 담채로 마티에르를 표현했다. 이후 한자와 한글을 끌어들여 콜라주, 수묵, 유화,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추상'으로 발전시켰다.
전시작들은 동·서양 미술을 굳이 갈라치기 하지 않았고, 장르와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움을 모색한 노작가의 열정을 보여준다. 전시는 다음 달 10일 폐막한다.



대전시 서구 만년동 이응노미술관은 새해 첫 전시로 소장품 중에서 이응노 대표작 150여점을 골라 소개한다.
이응노 작업을 추상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의 전각 전통과 연결지어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시 특징이다. 군중이 어울려 뒤엉키고 춤추는 듯한 풍경을 표현한 '군상' 연작은 서체적 붓놀림의 절정을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제작된 프린트에서는 전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출품작 중 한지에 먹으로 그리고 종이를 붙인 작품 '목숨 수(壽)'는 로랑 보두엥이 설계한 이응노미술관 모티브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전시는 3월 24일까지.



충남 홍성군 중계리 이응노의집(이응노 생가기념관) '이응노·박인경 도불 60주년 전시-사람·길'에서는 이응노과 아내 박인경 작품을 함께 감상한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1회 졸업생인 박인경은 22살 연상 이응노와 사랑에 빠졌고, 1958년 함께 유럽으로 향했다. 아내이자 동지로 이응노 삶을 지탱한 그는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에도 프랑스에 머무르며 작업을 이어온다.
출품작 73점 중, 유럽으로 건너간 직후인 1959년 부부가 각자 그린 '구성1', '무제'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일은 흥미롭다. '꽃의 편지'(2014) 등 박인경 근작은 아흔을 넘은 작가가 그린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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