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지시 등 윗선 개입 의혹은 규명 못해
"'USB 증거물 실종' 감찰 필요" 권고…당시 중수부장 "조사단이 해명 묵살"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사찰 사건에 대한 당시 검찰 수사가 청와대 등 '윗선' 개입 규명에 소극적이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만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역시 당시 청와대가 사건 은폐에 실제로 개입했는지 진상을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최근 대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사찰 사건'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법무부와 검찰에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조사결과 발표에서 "청와대와 총리실 비선조직이 민간인 등을 광범위하게 불법사찰 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검찰은 정치 권력을 향한 수사를 매우 소극적으로 벌였다"고 비판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사찰 피해자인 민간인 김종익 씨가 대통령을 명예훼손 했다는 사건을 수사했을 때부터 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1차 수사는 물론 내부폭로로 촉발된 2차 수사에서조차 청와대 등 윗선 가담자의 수사를 소극적으로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1차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지원관실 압수수색이 지연돼 증거인멸의 빌미를 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노환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당시 고위직이 조사에 응하지 않아 당시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 간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2차 수사 과정에서도 증거인멸 핵심 연루자에 대한 압수수색을 윗선 지시에 따라 총선 이후로 지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조사단은 권 전 수석 등 관련자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아 규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차 수사 때 청와대의 개입 정황이 담긴 핵심 물증이었던 USB가 대검 중수부에 건네진 뒤 실종됐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당시 박모 수사팀장에 의해 복수의 USB가 중수부에 전달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중수부는 디지털포렌식을 위해 해당 USB를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실에 전달했을 뿐이고 그 이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지만, 과거사위는 "포렌식 의뢰는 물론 분석결과나 반환 여부를 기록상 확인할 수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USB의 최종 행적을 확인하지 못한 가운데 과거사위는 감찰 등 실효성 있는 조사가 필요하며 범죄혐의가 확인될 경우 상응하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과거사위의 결론을 놓고 대검 중수부에서 USB를 수사팀에 넘기지 않고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자, 당시 중수부장을 지냈던 최재경 변호사는 "과거사위가 밝힌 조사결과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최 변호사는 "수사팀으로부터 받은 복수의 USB는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실에 분석을 맡겼고 그 뒤로는 절차에 따라 포렌식 뒤 수사팀에 자료를 인계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이어 "'USB 원본을 갖고 포렌식을 했다'는 당시 대검 수사관 2명의 진술 녹취서를 진상조사단에 제출했는데도 조사단이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사찰 사건은 2010년 6월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의혹 제기로 처음 수면 위에 떠 올랐다.
민간인인 김종익 전 KB한마음대표가 블로그에 이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쥐코' 동영상을 올렸다가 지원관실의 전방위 불법사찰을 받은 끝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는 내용이 골자다.
검찰은 2010년 1차 수사에서 사찰이 실제로 있었음을 확인하고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사찰 관련자 3명을 강요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으나 그 윗선은 밝히지 못했다.
이후 장진수 전 총리실 지원관실 주무관이 2012년 3월 불법사찰을 넘어 증거인멸 지시가 있었고 입막음용 '관봉'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2차 수사에서도 검찰은 '내가 증거인멸의 몸통'이라고 자인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해 일부 관련자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했을 뿐 그 윗선 등 사건 전모를 밝히는 데에는 미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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