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프간 미국특사 언급…"국제테러조직 불허 및 정전 대가로 철군"
철군 시기·아프간 정부-탈레반 갈등 등은 과제…"악마는 디테일에"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2001년 미군 공습 이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종식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8일 현지 언론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대표단과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 측은 카타르 도하에서 지난 21일부터 6일 연속 협상을 벌인 결과 전례 없는 극적 성과를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주재 미국특사는 협상 종료 후 아프간 카불에서 가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탈레반은 평화협정의 뼈대가 될 원칙에 합의했다"며 "우리는 협정으로 구체화해야 할 초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할릴자드 특사는 "탈레반은 아프간이 알카에다 같은 국제테러조직의 근거지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대화에 임하고 지속적인 정전에 동의하면 미국도 철군에 동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은 이에 앞서 양측이 현지 주둔 외국군을 18개월 이내에 철수시킨다는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다는 소식까지 전했다.
하지만 아프간에 평화가 완전히 정착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많다.
미군 철수 규모와 시기, 철수 후 전력 공백 우려,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 대립, 탈레반 치하의 여성 인권 문제 등 각종 난제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표현했다.
◇ 도하 협상서 내전 발발 후 가장 큰 타협
도하 협상이 끝난 후에도 미국과 탈레반 모두 구체적 협상 결과에 관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외신과 현지 언론은 여러 소식통을 인용, 이번 협상에서 내전 발발 후 가장 뚜렷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할릴자드 특사도 지난 26일 트윗을 통해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된 게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번 회담은 과거 어느 때보다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도하에서 온 뉴스가 고무적"이라며 "미국은 진지하게 평화를 좇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도 로이터통신에 "미국도 아프간에서 외국군을 철수시키는 문제에 전념하고 있다"며 "미국은 아프간에 영구적으로 군대를 주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탈레반 정권에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무타심 아가 잔 역시 이날 아프간 톨로 뉴스에 "양측이 매우 중요한 이슈에 합의했다"며 "(평화)협정 체결에 근접한 상태"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미국과 탈레반은 이번 회담 내용을 검토한 뒤 다음 달 25일 후속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 여러 평화협상 실패…미국-탈레반 직접 대화로 새 동력
앞서 아프간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평화협상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미국-탈레반 간 포로-죄수 맞교환, 아프간 문제 논의를 위한 카타르 정치사무소 개설 등 간간이 성과가 있었지만, 고비 때마다 협상 당사자 간에 이견이 불거졌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탈레반은 "미국의 꼭두각시인 아프간 정부와 머리를 맞댈 수 없다"고 맞서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2015년 7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내전 1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회담을 열었지만, 탈레반이 벌인 대형 테러와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하마르 오마르의 사망 등이 겹치면서 평화협상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가 2016년 9월 탈레반 다음으로 큰 반군세력인 '헤즈브-에-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말 탈레반 내부에서도 무차별 테러를 중지하고 정부와의 평화협상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대두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해 중반부터 미국이 직접 탈레반과 협상에 나서면서 협상에 탄력이 붙었다.
지난해 7월 앨리스 웰스 미국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수석 부차관보를 앞세운 미 대표단이 탈레반 측 대표 6명과 극비리에 만난 게 시발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이번 회담을 주도하는 할릴자드 특사가 지난해 10월부터 탈레반 대표단과 잇달아 회동, 평화협상 동력 확보에 나섰다.
◇ 철수 시기·여성 인권·IS 존재 등 난제 산적
미국과 탈레반이 평화 정착을 향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뗐지만, 향후 협상에 가시밭길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보한 오스만 연구원은 평화 정착까지 알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며 "이번 협상은 이제 시작일뿐"이라고 AFP통신에 설명했다.
실제로 양측이 미군 철수에 원칙적으로 합의한다고 할지라도 1만4천명 규모인 미군을 언제 어떻게 어떤 규모로 발을 빼게 할지 더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할릴자드 특사도 평화협상 타결에는 포괄적인 정전은 물론 아프간 내전 당사자끼리 대화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협상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아프간 정부 체제에 순순히 편입할지도 의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탈레반은 2001년 이후 현재 가장 힘이 센 상태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2015년 72%에 달했던 아프간 정부 장악 지역이 최근 56%로 떨어졌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은 40% 아래라는 분석도 있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면 전력 공백이 생겨 오히려 또 다른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현지 여성의 인권도 더 위협받을 수 있다.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에 따른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탈레반은 여자 어린이 교육 금지, 공공장소 부르카(여성의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는 복장) 착용 등 여성의 삶을 강하게 규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상 움직임이 아프간 여성에게는 오히려 공포감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내 이슬람국가(IS)의 움직임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15년부터 아프간에 본격 진출한 IS는 최근 각종 테러를 일으키며 영향력 확대에 힘쓰고 있다.
◇ 미국 내 비판 여론 비등…"미국만 손해 볼 협상"
갑작스러운 미군 철수와 관련한 미국 내 비판 여론도 관건이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 없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시리아 등 세계 분쟁지역에서 발을 빼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주둔 미군 수의 7배가 투입된 아프간에서 미국이 갑자기 철수하면 그간 미국이 현지에서 공들인 테러 억제 노력 등이 허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라이언 크로커 전 아프간주재 미국대사는 미국은 아프간 탈출을 급하게 서두르고 있다며 지금 상황은 미국이 아프간 철수를 치장하려는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미국은 많은 것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만, 탈레반은 잃을 게 거의 없는 협상이 예상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도 이번 도하 협상과 관련, 평화협상을 서두르는 분위기에 우려를 드러냈다.
가니 대통령은 과거 소련 철수 후 아프간이 유혈 참극의 무대로 변한 것을 거론하며 "우리도 평화가 빨리 오기를 원하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중한 태도가 중요하다"며 "평화협정은 아프간인들이 주도해야 하며 탈레반도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2001년 이후 아프간에서는 총 2천419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미국이 아프간에 쏟아부은 돈은 무려 9천320억 달러(약 1천40조원)로 추산됐다.
이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부흥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에 투입한 전체 비용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보다 큰 규모라고 뉴욕타임스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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