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명 모여 간도 일본 총영사관까지 행진하다 中 지방군 발포로 19명 숨져
"평화적으론 독립 불가 자각 계기…이듬해 봉오동·청산리 전투로"
집회 장소에 유치원 들어서…학생 안전 때문에 외부인 출입 금해 기념비 근처도 못 가
(룽징=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일제 강점하의 한반도에서 3ㆍ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여일 만에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중국 지린성 룽징(龍井) 서전(瑞甸)벌에 2만여명이 모였다. 간도 각지에서 온 한인들이었다.
'독립선언축하회'라는 명칭이 붙은 이 집회에서 간도의 한인 대통령으로 불리던 김약연 선생이 독립선언포고문을 발표하자 모여든 한인들은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서전벌에서 2㎞가량 떨어진 간도 일본 총영사관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조선 독립을 승인하고 철수하라'는 요구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명동학교와 정동학교 학생들이 행진선두에 선 가운데 악대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분위기를 띄웠고, 참가자들은 태극기 등을 흔들며 독립선언문을 뿌렸다.
하지만 길목을 막고 있던 약 70명의 중국 지방군대가 만세운동 참가자들과 대치하다 발포하면서, 19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48명이 다쳤다.
3ㆍ1 운동 이후 최초의 해외 반일 시위인 3·13 만세운동이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 1월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주창되는 등 약소민족 독립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이광평 룽징 3·13 기념사업회 회장은 "조선인 대표들이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회의를 열고 독립선포 날짜를 정하기로 했지만,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면서 "그러던 중 3·1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준비를 서두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룽징의 3ㆍ13 만세 운동 현장인 서전벌을 찾았다. 지금은 꽤 규모가 큰 유치원이 들어서 있다. 유치원 앞마당에는 3·13 집회가 열린 곳임을 알려주는 기념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유치원 부지 안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국 당국이 학생 안전 등을 이유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입구 쪽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념비부터 시작해 일본 총영사관까지 가는 약 2km의 당시 행진 경로에서는 100년 전 이곳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음을 짐작게 하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발포 현장으로 추정되는 도로에는 차량과 행인들만이 바쁘게 오갔다.
만세운동 희생자들은 3월 17일 룽징 합성리 공동묘지에 묻힌다.
이 회장은 "일제의 감시 속에 참배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묘가 쓸쓸해졌다"면서 "이후 '만세묘지'로 불리던 이곳을 30번 넘게 와서 3·13 반일의사릉임을 확인했고 1990년 나무로 된 비를 세웠다"고 말했다.
실제 1990년 초반 사진을 보면 묘지에 전봇대가 서 있고, 봉분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현재는 다행히 묘소가 정비되고 커다란 석비가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시 중점문화재 보호 단위로 지정된 상태다.
하지만 이 회장은 "시간이 너무 흘러 후손이 누군지 알 수 없고, 각 묘가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또 시위 때 맨 앞에 섰다가 총에 맞아 숨진 명동학교 학생 김병영 선생은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3·13 만세운동 이후 반일시위가 옌볜(延邊) 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4월 말까지 40여 차례 시위가 일어났고 연인원 8만6천여명이 참가했다는 기록도 있다.
또 연해주 지역의 3·17 만세운동에도 영향을 미쳤고, 중국의 5·4운동 이후 항일 집회에도 조선인들이 적극 참여한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3·13 운동의 가장 큰 교훈은 평화적으로는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없으며 무장으로 맞서야 한다는 점이었다"면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1920년 6월의 봉오동 전투와 10월의 청산리 전투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만세운동이 항일 무장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했던 한반도와 달리 1931년 만주사변 전까지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면서 "이곳에서는 1945년 광복 때까지 계속 총을 들고 일본과 싸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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