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탈코르셋' 고민하다가…진로 바꾸는 뷰티 업계 지망생들

입력 2019-02-02 06:00  

[인턴액티브] '탈코르셋' 고민하다가…진로 바꾸는 뷰티 업계 지망생들


(서울=연합뉴스) 이세연 인턴기자 = "나는 왜 하필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는 일에 재능이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이제껏 제가 쌓아온 커리어를 버리는 건 힘들었지만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해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머리를 한 김소영(가명·23)씨는 지난 11일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뷰티 마케터가 되고 싶었던 그는 2016년부터 뷰티 블로그를 운영했다. 누적 방문자 18만명을 기록하는 등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탈코르셋'을 접하고 블로그 문을 닫았다.
'탈코르셋'은 벗어난다는 뜻의 '탈'(脫)'과 체형 보정 속옷인 '코르셋'(corset)을 결합해 만든 신조어. '탈코르셋' 운동은 사회적으로 고정된 '여성스러움'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화장하거나 꾸미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다.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 페미니즘이 지지를 얻으면서 확산하고 있다.
겉모양이나 꾸미기를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뷰티 업계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여성들은 어떤 반응일까.

◇ "메이크업을 시작한 걸 후회해요"
김씨가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화장품 브랜드의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다. 회사측이 컨실러(얼굴의 잡티를 가리는 피부화장품) 제품을 소개할 때는 '여성이라면 깨끗한 피부가 필요하잖아요'라는 문구를 꼭 쓰라고 요구하는 걸 보고, 여성에게 외모적 압박을 가하는 것 아닌가 하고 느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포토샵은 필수예요. 색조 화장품을 보여줄 때 사진 하나하나 모공을 지우고, 입술 모양과 각도, 치아까지도 보정해요. 이런 점을 모른 채 누군가 저의 포스팅을 보고 '나도 저런 외모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며 뷰티 관련 학과에 진학한 이하은(가명·22)씨도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씨는 "탈코르셋을 알고 난 후 뷰티 산업을 공부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며 "뷰티 산업은 여성의 외적 단점을 기어코 찾아낸다. 그게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메이크업을 좋아했던 과거를 후회한다고도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뷰티 관련 학과 3학년 학생 A씨. 그는 경력을 계속 발전시키지 않고 화장품 연구원이 되기로 했다. 그는 "탈코르셋 현상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이 줄었다"며 "이미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지금 와서 진로를 완전히 바꾸기는 힘들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A씨는 "업계의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뷰티 업계 대기업의 매출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며 탈코르셋 운동으로 대표되는 꾸밈 노동에 대한 반감이 실제로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뷰티 산업을 꿈꾸던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뷰티 산업이 여권신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여성이 주 타깃인 현재의 뷰티 산업은 미의 기준을 획일화한다. 이 거대한 흐름을 깨지 않고서는 뷰티 업계에 몸담으면서 페미니즘을 실현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이제껏 배운 기술로 무대분장, 아트메이크업(작가의 주관적 감성을 얼굴과 인체에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메이크업)과 같이 충분히 다른 길을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

◇ 뷰티업계에도 변화 조짐이…
실제 뷰티 업계의 분위기는 어떨까. 메이크업 샵 '순수'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세영(26)씨는 "가게에서도 탈코르셋 이슈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지만 분위기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여성스럽게' 되길 원하는 고객이 줄어들긴 했다고 한다. 그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탈코르셋 붐이 실제 매출에는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 뷰티 산업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박씨는 "결혼과 면접같이 중요한 날에는 여성들에게 메이크업이 필수라는 인식이 아직 바뀌지 않아서인지 예약이 꾸준히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코르셋이 사회적으로 쟁점이 될 경우 장래에는 고객이 줄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아모레퍼시픽 영업팀에서 일하는 차민경(29)씨는 "탈코르셋이 뷰티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워낙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거나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 지속해서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다 떠나면 오히려 미의 기준이 획일화될 것" 반론도
탈코르셋 이슈가 부각된다고 해서 뷰티 업계 진출을 준비하는 이들을 무분별하게 비판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서울 4년제 대학의 뷰티 관련 학과 2학년 이아현(가명)씨는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며 꿈꿨던 분야가 여권신장을 방해하는 분야가 되어버린 이 상황이 난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이대로 간다면 내 미래는 안녕할까 하는 걱정을 수없이 많이 한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여성 인권에 대한 자각이 있는 사람이 뷰티업계에 꼭 남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뷰티 계열 전공자 김은하(가명·22)씨는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모두 뷰티 업계를 떠났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여성 인권이나 탈코르셋 운동과 관련된 지식이나 이해가 없는 이들만 뷰티 업계에 남으면 현재의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더 강화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또는 페미니즘 바람을 등에 업고 '센 언니' 컨셉의 여성상이 과도하게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메이크업이 꼭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라며 "나는 메이크업 업계에 남아 아트메이크업을 통해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허물고 싶다"고 말했다. 뷰티 업계에서도 탈코르셋과 페미니즘을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인 셈.
뷰티 계열 전공자 박민지(가명·22)씨도 뷰티 관련 학과를 없애거나 터부시하는 게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뷰티를 전공하는 것이 여성 인권에 반하는 일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다"라고 말했다. 기존 사회에서 추구하는 미의 방향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씨는 탈코르셋 바람과 뷰티 업계를 대결 구도로만 보기에 앞서 미에 대한 재정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sey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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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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