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일 답사기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았다. 민족사적으로 감회 깊은 한 해가 아닐 수 없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2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다. 3·1운동은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금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1919년 4월 11일, 국권 피탈로 사라진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거듭났다. '황제'가 주권자인 나라에서 '시민'이 주권자인 나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역시 3·1운동이 결정적 전기가 됐다.
역사 여행가 박광일 씨는 사진작가 신춘호 씨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3년 동안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긴긴 노정을 탐사하며 선열들이 남긴 열정과 인고, 분열과 통합의 흔적을 더듬었다. 이번에 출간된 인문학적 탐방 답사기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은 그 노정의 생생한 기록이다.
독립운동가들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대장정의 험로였다. 1919년 4월 상해 시기로 막을 연 임시정부는 일제의 마수를 견디지 못하고 1932년 5월 상해를 탈출한다. 그리고 항주(1932.5.~1935.11), 진강(1935.11~1937.11), 장사(1937.11~1938.7), 광주(1938.7~1938.10), 유주(1938.10~1939.4), 기강(1939.4~1940.9), 중경(1940.9~1945.11)으로 옮겨 다닌다.
그 거리는 무려 6천km. 가히 독립을 향한 대장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박씨는 항주 시기에서 기강 시기까지 8년여를 '이동 시기' 또는 '장정 시기'라고 규정한다. 장강을 중심으로 여섯 군데 도시를 옮겨 다닌 '물 위에 뜬 정부'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장강일기'라는 책에 "이름, 명예, 자존, 긍지보다는 우선 급한 것이 생활이었다"며 고초를 털어놓기도 했다.
저자는 임정 요인들이 떠다닌 피와 땀과 눈물의 험로를 다시 밟으며 그 자취를 역사적 사실의 기술과 함께 새로운 탐사 기록으로 남겼다.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은 물론, 역사를 뒷받침하는 사료 도판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이동 경로, 답사 지도 등을 다수 첨부해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준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김구와 김원봉, 이봉창과 윤봉길, 조소앙과 박찬익, 곽낙원과 정정화 등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꾸고 실현하는 데 앞장선 선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옮겨 다녀야만 한 이동 시기, 김구가 숨어 지냈다는 피난처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노라면 자못 숙연해진다.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윤봉길의 다짐에서도 결연한 비장미가 느껴진다.
현장 역사서인 이 책은 묵직한 역사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감상을 더한 답사기에 멈추지도 않는다. 왜 이곳을 꼭 들러야 하는지, 이곳에는 우리의 어떤 역사가 숨 쉬는지, 중국이 자국 역사도 아닌 유적을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보존한다는 것이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을 찬찬히 들려준다.
저자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관심이 큰 사건이었다"면서 "'독립'을 외쳤던 이들은 대한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었다"고 그 의미를 깊게 되새긴다. 그러면서 "지금의 우리에게는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생각정원 펴냄. 388쪽. 1만8천원.
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