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기업 견학·문화 탐방…"시야 넓어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도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강원도 홍천군 시골의 다문화학교인 해밀학교 학생들이 생애 첫 해외 나들이로 2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를 방문했다.
재일동포 기업인 에이산(회장 장영식)과 동경한국상공회의소의 초청으로 진로탐방에 나선 것.
출발 전 '오하요우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인사말을 배운 10명의 학생은 낯선 일본에 신기해하면서도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설레 임에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어머니가 일본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이라서 모국이 제각각인 이들은 다문화에 대한 차별적 시선으로 맘속에 상처가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명랑한 여느 중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28일 동경한국상공회의소 신년회 행사에 참석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재일기업인들과 만났다.
행사에는 일본 여당인 공명당의 다카기 미치요 국회 중의원, 한국계인 백진훈 민주당 국회 참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일본 정계 인사들과 경제단체장 등이 참여해 축사했다.
자신이 남과 달라 한국인인지 베트남·중국 등 외국인인지 정체성 혼란으로 의기소침한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다문화로 살면서 당당하게 뿌리내린 재일동포 기업인의 모습을 본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머니가 일본인인 심은미 학생은 "주류사회로부터 대접받는 재일동포를 보니 든든한 마음도 들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반겼다.
이튿날인 29일에는 에이산이 운영하는 면세점을 견학 후 직원들로부터 취업 및 해외 생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장영식 회장과의 멘토링 시간도 가졌다.
25년 전 일본으로 건너와 3천억원 연 매출의 기업을 일군 장 회장은 "어느 세상이나 소수자는 차별받기 마련"이라며 "남과 다름에 두려워 말고 오히려 눈에 띌 수 있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생들은 미리 질문할 내용을 뽑아와 일본에 취업하면 평균 초임이 얼마인지 또 외국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지 묻기도 하고, 노트에 메모하는 등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이었다.
장 회장은 일본은 현재 다문화공생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에다가 인구 감소로 외국인 유입이 늘고 있어서 기업의 직원 채용 시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구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고, "에이산은 인종·학력·성별·연령 구분 없이 채용한다"고 소개하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중국인 부모를 둔 김미나 학생은 "출신국이 어디인지를 따지지 않는다면 일본 취업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통·번역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일본어도 배워서 한·중·일을 무대로 활약해 보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서 일본 문화 체험에 나선 학생들은 에도도쿄박물관을 견학하며 151년째 일본의 수도로 20대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는 글로벌도시 도쿄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젊은이의 거리인 하라주쿠를 방문했다.
난생처음 일본 방문에 모든 것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신기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들답게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돼지고기와 닭 뼈 국물 육수로 내린 일본 라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고, 만나는 일본인에게 배워온 인사말을 먼저 건네기도 했다. 또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부모님께 드린다며 파스 세트를 사는 등 가족 선물도 챙겼다.
모국이 베트남인 부이광안 학생은 휴대폰으로 촬영한 거리풍경과 자동차 사진을 보여주며 "자동차 왕국인 일본에서 수많은 차와 오토바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며 "한국 차와 일본 차를 베트남으로 수입하는 비즈니슬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래에 무엇을 하며 살지 막연했다는 정은찬 학생은 "하라주쿠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 장발에 레게머리 한 여성, 애니메이션 복장의 코스튬을 한 학생 등 강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신기했다"며 "더 많은 세계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즐거워했다.
이번 행사에는 학교 설립자인 가수 인순이 이사장과 안만조 교장·강예슬 인솔교사도 함께했다.
인순이 이사장은 "2013년 개교 이래로 해외 탐방에 나선 것은 처음"이라며 "학생들이 국내서 차별적인 의미로 잘 쓰이는 다문화가 해외에서 글로벌사회의 상징인 것을 안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반겼다.
30일 도쿄 디즈니랜드와 시내 탐방으로 일정을 마치는 이들은 31일 귀국한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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