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진천선수촌…체육회, 여자 친구 방에 데려온 선수 '퇴촌'

입력 2019-01-31 20:55  

허술한 진천선수촌…체육회, 여자 친구 방에 데려온 선수 '퇴촌'
'지금 어떤 분위기인데'…철없는 선수 일탈에 체육계 개탄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뒤늦게 드러난 폭력·성폭행 고발로 체육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한 상황에서 한 국가대표 선수의 철없는 행동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남자 기계체조 대표 선수 A 씨는 지난 25일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내 숙소에 여자 친구를 데려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선수촌 숙소는 대표 선수, 대표팀 지도자가 아니고선 들어갈 수 없는 일종의 보안 구역이다.
여자 친구의 호기심과 선수의 방심이 부른 이번 사건은 A 씨 여자 친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수촌 방문 사진을 올리면서 외부로 삽시간에 퍼졌다.
이를 접한 체육회 훈련본부는 30일 A 선수에게 즉각 퇴촌 명령을 내렸다.
선수·지도자 퇴촌은 체육회에서 내리는 중징계로, 선수촌에서 쫓겨난 이들이 다시 입촌한 전례는 없다는 게 체육계의 중론이다.
대한체조협회는 우선 A 선수의 해외 대회 출전 자격을 31일 박탈했다. A 선수는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당혹스러웠다"며 "체육계가 위기인 상황에서 해당 선수의 잘못된 행동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설 연휴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집행부, 경기력향상위원회가 A 선수의 징계를 결정할 것"이라며 선수촌 퇴촌에 버금가는 대표 박탈 등의 엄벌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협회는 선수들이 일탈하지 않고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도록 감독 등 지도자에게도 더욱 철저히 선수들을 관리해달라고 주문했다.
A 선수는 남자 기계체조 6개 전 종목에 능해 대표팀에 큰 힘을 줬다. 훈련 태도도 모범적이고 그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이번 사건으로 사실상 도쿄올림픽 출전은 어려워졌다.
선수촌 운영과 국가대표 선수들을 관리하는 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A 선수가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몰래 여자 친구를 숙소에 데려와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선수촌 지침에 따라 징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체육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개탄한다.
체육회가 서둘러 대응했다곤 하나 보안 시스템의 허술한 측면이 또 한 번 드러났다. 국가대표 선수 관리의 허점이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체육회 측은 "보안을 강화하고자 스크린도어를 선수촌에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했지만, 선수와 지도자들의 저항이 심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도 문의했더니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해석을 받아 설치하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선수나 지도자가 사전 요청만 한다면 선수촌 식당에서 외부인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지만, 이번처럼 몰래 외부인을 데리고 들어오는 사례를 사전에 모두 인지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 백명이 지켜도 한 명의 도둑을 막을 수 없다는 옛말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항변이다.
A 선수의 사건은 최근 드러난 체육계 폭력·성폭행과는 무관하나 이 탓에 입지가 좁아진 엘리트 체육의 현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일련의 사태로 체육계에 여러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인데도 정작 엘리트 체육인들이 이런 위기감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체육회와 회원 종목 단체가 국가대표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고 교육해야 하는지 정립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any990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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