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평등한 제례문화 정착 정책 제언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모두가 풍성하고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이 다가오면 걱정부터 앞서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 바로 '며느리'다.
시댁에서 고되게 일하는데다가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받는 경우도 많아 연휴 기간 근무를 자처하는 등 명절을 피하기까지 한다.
명절이나 제사는 가족·친지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전통문화로서 계승·발전할 가치가 있지만 제사 준비는 여성의 몫이면서 여성이 제사에서 주체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에 '명절·제사증후군'과 같은 부담이 생긴다.
3일 제주여성가족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발간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제주지역 제례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제례(기제사, 명절 차례 등)의 성불평등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연구진이 지난해 11월 2∼18일 제사를 지내거나 제례에 참석하는 제주 거주 만 30세 이상 기혼 성인 남녀 4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제사를 위해 시장을 보는 구성원은 부인 50.3%, 남편과 부인 23.6%, 가족이 함께 23.1%, 남편 3.1% 순이었으며 음식 만들기도 부인 49.6%, 가족이 함께 40.7%, 남편과 부인이 함께 8.7%, 남편 1% 등의 순으로 부인이 가장 큰 부담을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축문 작성은 남편이 하는 경우가 79.7%였고, 의례 수행 주도 역시 남편이 한다는 응답이 74.9%로 대부분 남편이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사를 준비할 때 주부가 관장하고 며느리와 딸들이 이를 따라야 한다는 문항에는 그렇다 44.1%, 보통 31.5%, 그렇지 않다 24.4%로 찬성 의견이 가장 많았지만 절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문항에 대한 응답은 남성의 경우 찬성 52.8%, 보통 32.5%, 반대 14.7%로 찬성이 많았던 반면 여성은 찬성 35.8%, 보통 30.4%, 반대 33.8%로 의견이 고르게 분포했다.
연령대별로는 30대에서는 반대가 41.3%로 가장 많았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율이 증가해 60대 이상에서는 찬성이 61.8%로 가장 높게 나타나 60대 이상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줬다.
제사의 힘든 점으로는 제사 음식 준비(48.9%)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제사 풍습이 성불평등한 문화라는 문항에는 그렇지 않다 37.4%, 보통 32.9%, 그렇다 29.7% 순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성별로 보면 여성은 성불평등하다는 응답이 37.7%로 가장 많았고, 남성은 불평등하지 않다는 응답이 48.7%로 차이가 있었다.
제사 문화 중 성불평등한 영역은 시장 보기 및 음식 만들기 53.7%, 청소·설거지 24.1%, 제사 절차 14.5% 등으로 가사노동에 대한 성불평등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제례문화 내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며, 특히 주로 여성이 부담해왔던 가사노동을 남녀가 함께 부담하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성평등한 제례문화 정착을 위한 정책과제로 역사 속 제례문화의 성평등 사례 소개, 참여형 캠페인 추진, 남성 시니어를 위한 제례음식 요리 교실,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통한 노력, 제주지역 여성 문화유산 계승과 보존 등을 꼽았다.
제사 준비와 의례 절차 모두 남성과 여성이 함께 행하는 것으로 돼 있는 과거 문헌 등 역사 속 사례를 발굴해 홍보하고 제례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60대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제례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기회를 제공해 성 역할 인식 변화를 꾀하고 음식 만들기의 기쁨과 어려움을 간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각계 전문가와 여성·시민단체, 도정이 함께 제례문화 속 성평등 실천과제를 발굴·확산하고 타 지역과 확연히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을 가진 제주지역 제례음식에 대한 지식과 기술 등 제주 여성이 계승해온 유산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제언했다.
보고서 전문은 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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