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전 정조 초상화, 전통화법에 대한 고증 부정확"

입력 2019-02-05 09:00  

"화령전 정조 초상화, 전통화법에 대한 고증 부정확"
윤진영 한중연 책임연구원 주장 "사실적 묘사에만 치중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수원 화성(華城) 안쪽에 있는 화령전(華寧殿·사적 제115호)은 조선 정조(재위 1776∼1800) 어진(御眞·임금 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1801년 완공된 화령전에는 사도세자 무덤인 현륭원 재실에 보관된 정조 어진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어진이 함께 봉안됐다.
100년 넘게 화령전에 소재한 정조 어진 2점은 1908년 국가 제사제도가 개편되면서 덕수궁 선원전으로 옮겨졌다. 이후 창덕궁으로 다시 이전됐다가 한국전쟁 때 다른 조선 어진들과 함께 부산으로 이송됐으나, 1954년 화재로 소실됐다.
한동안 어진이 없었던 화령전에는 1989년 수원 출신 이길범 화백이 곤룡포 차림으로 그린 정조 초상화가 걸렸으나, 과거 어진 속 정조 복장이 군복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004년 어진이 다시 제작됐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조선시대사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조선시대사학보'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 같은 화령전 정조 어진의 내력을 정리한 뒤 현 초상화의 문제점을 고찰했다.
윤 연구원은 "정조 어진에서 제작 당시 화법과 복식의 고증은 매우 중요한데, 지금 걸린 초상화는 전체적으로 볼 때 고증이 정확하지 않다"며 "얼굴과 복식의 표현은 사실적 묘사에 치중했을 뿐 당시 화법에 대한 이해는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명기와 김홍도를 비롯해 한종일, 김득신, 이종현이 참여해 정조 어진 여러 점을 완성한 시기는 1791년. 윤 연구원은 당시가 조선 후기 초상화 수준이 절정에 달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기와 김홍도가 합작한 '서직수 초상'(보물 제1487호)이나 이명기가 단독으로 그린 '오재순 초상'(보물 제1493호)이 정조 어진 재제작 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조언하면서 "이명기 작품은 눈의 안쪽과 끝에 붉은 기운을 삽입해 생동감을 나타내고, 피부 모공까지 그려내는 매우 정밀한 육리문(肉理紋) 화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연구원은 지금의 화령전 어진은 이러한 전통화법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사진을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윤 연구원은 정조 어진 뒤편에 놓은 그림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와 달, 다섯 개 봉우리를 묘사한 일월오봉도를 어진과 배치할 때는 벽면을 채울 정도로 화면이 커야 하지만, 화령전 일월오봉도는 세로 길이가 짧아 병풍 위아래에 붙인 비단 면이 크게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연구원은 어진 속 복식과 장황(裝潢·비단이나 종이를 발라 화첩이나 족자를 꾸미는 것)에 대한 고증 연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 연구원은 "정조 어진은 독립된 영전(影殿)에 봉안한 유일한 사례였다"며 "화령전 어진을 다시 복원한다면 과거에 크고 작은 어진 두 점을 모셨던 화령전의 위상과 역사성을 고려해 군복을 입은 작품을 대본과 소본으로 각각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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