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표·기차표에서 르까프까지…토종 신발 브랜드 '흥망성쇠'

입력 2019-02-10 09:05  

말표·기차표에서 르까프까지…토종 신발 브랜드 '흥망성쇠'
외국 브랜드 공격 마케팅에 설 자리 잃어…남북경협 계기 재도약 모색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 말표, 기차표, 왕자표, 타이거, 프로스펙스, 르까프….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토종 신발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국내 신발산업은 1945년 서울, 인천, 평양, 군산, 부산 등에서 고무신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특히 부산은 일본 신발산업 중심지인 고베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관련 기술과 부자재를 쉽게 도입할 수 있어 신발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전쟁 이후 풍부한 노동력도 부산 신발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1947년 '말표'라는 상표를 내세운 태화고무공업사를 시작으로 1949년 '왕자표' 국제고무공업사, 1953년 '기차표' 동양고무공업, 대양고무공업, 1954년 '범표' 삼화고무공업 등이 잇달아 부산에서 설립됐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가 세계 신발 시장을 주도했지만, 부산을 중심으로 한 이들 1세대 신발 기업들이 점차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주요 군수품인 군화를 생산하면서 우수 제품을 다량 생산하는 기술을 습득한 때문이다.
여기에 가황(고무에 황을 첨가) 공정제품을 앞세운 기술력도 한몫했다.

신발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86년에는 국제상사가 1만5천700명의 종업원을 둔 것을 비롯해 동양고무 1만2천650명, 삼화 9천200명, 태화 8천600명, 진양고무 7천명 등 5개 업체에만 5만4천여명이 근무했다.
1세대 기업인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국내 신발은 1962년부터 수출길을 개척했다.
1971년 5천만 달러, 1973년 1억 달러, 1975년 1억9천만 달러를 수출하며 국내 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70년 한 해에 7천만 켤레를 생산한 데 이어 1975년에는 1억5천만 켤레를 만들었다.
나이키가 국내에 들어온 시점도 이때다. 일본 닛폰고무와 기술적으로 연결됐던 삼화가 1970년 나이키 제품을 독점 생산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한 삼화가 독점권을 포기하면서 국내 대형 신발업체들은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기보다 나이키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증가하면서 수출실적은 1985년 21억 달러, 1990년에는 43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OEM으로 국내 신발기업이 큰 이익을 얻는 사이 국내 브랜드 시장 점유율은 약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1982년 리복의 등장으로 심화했다.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외국계 회사들은 국내 업체에 중국과 동남아로 생산시설을 옮길 것을 강요했다.
국내 생산시설이 하나둘씩 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1998년에는 수출실적이 8억1천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국내 완제품 시장도 함께 쪼그라들기 시작했고, 이후 국내 업체는 소재 수출에 주력했다.

국내 신발업체 역시 이 시기 해외 투자에 나서야 했지만, 1989년 해외 투자 제한조치 탓에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프로스펙스를 생산하던 국제상사가 정치적인 이유로 해체되면서 국내 신발산업은 더욱 위축됐다.
이 틈을 타 나이키는 1986년 한국 나이키를 설립했고, 리복도 1986년 화승과 합작형태로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국내 신발 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화승은 1986년 르까프라는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했다.
국제 행사를 계기로 신발 브랜드를 키웠던 일본 사례를 뒤따라 프로스펙스와 르까프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발판삼아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OEM과 브랜드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글로벌 시장의 높은 벽에 막혀 실패를 맛봐야 했다.
이후에도 신발업체의 도전은 계속돼 부산 업체인 트렉스타와 비트로가 각각 등산화 브랜드와 전문 스포츠화 부문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부산시도 뒤늦게 신발 브랜드화에 필요성을 느끼고 1997년 금융기관, 신발 및 의류업체와 함께 부산 공동브랜드 테즈락을 설립했지만, 경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국내 시장 규모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국내 업체는 아예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2007년 필라코리아가 필라 본사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외국 브랜드의 공략강화에 아웃도어 시장까지 침체하면서 토종 브랜드는 2015년부터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최근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화승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수년간 OEM을 넘어 제조자개발생산(ODM)을 해온 경험을 고려할 때 국내 신발산업의 재도약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남북 경협도 국내 신발산업을 되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인건비가 싸고 기술 인력이 풍부한 데다 원부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남북 경협은 국내 신발업계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신발업계의 견해다.

pc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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