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속한 로펌사건 배제' 대법 윤리규정, 전합 일괄적용 논란

입력 2019-02-08 15:42  

'친족 속한 로펌사건 배제' 대법 윤리규정, 전합 일괄적용 논란
김명수 대법원장, 규정과 달리 강제징용소송 재판에 김선수 대법관 참여결정
"규정 취지 무색" 비판…"기계적 적용은 전합제도 훼손, '재판부 쇼핑 조장" 반론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특정로펌과 관계가 있는 대법관의 재판참여를 제한하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제8호'를 일부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에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대법원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10월 권고의견 8호와 관련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대법관이 개별 사건마다 재판의 공정성에 의심이 예상되는지를 스스로 판단해 사건을 맡을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이 권고의견 8호의 취지에 반하는 것인지를 가려달라는 취지였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그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경우에 대법관은 스스로 회피할 수 있고 다만 대법관회의에서 공정성과 그 외관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회신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고의견 8호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에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이 재판 공정성을 위해 만든 권고의견에 어긋나는 입장을 내비쳤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역시 이런 입장을 수긍한 셈이다. 이를 두고 사법부 스스로 권고의견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반대로 김 대법원장의 입장에 찬성하는 의견도 법조계에서는 적지 않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상당수 법조인들은 오히려 '권고의견 8호를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히 판단해야 할 문제'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2013년 제정된 권고의견 8호는 "법관의 배우자나 2촌 이내 친족이 법무법인 등에 변호사로 근무하는 경우, 법관은 해당 법무법인 등이 수임한 사건을 처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에 따라 서울중앙지법을 포함한 일선 법원에서는 해당 법관에게 2촌 이내 친족이 소속된 로펌의 사건을 배당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사회적 의미와 파급력이 큰 사건에 대법관 전원이 관여하도록 해 다양한 견해가 판결에 반영되게 한다'는 전원합의체 제도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고의견 8호가 제정될 당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도 "법관의 수가 적고 다른 법관에게 위임할 수 없는 중요한 헌법 기능이나 상소심 기능을 가진 최종심에서는 회피사유가 있는 법관이 사건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또 미국 연방대법원도 1993년 '연방대법관의 친족인 변호사가 연방대법원 사건의 당사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의 파트너라는 사실만으로는 곧바로 회피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선언한 바 있다. '단 하나의 불필요한 회피가 연방대법원의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형로펌들이 권고의견 8호를 특정 재판부가 재판을 맡는 것을 피하고, 선호하는 재판부를 찾는 이른바 '재판부 쇼핑'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원합의체 사건의 경우에는 특정 대법관의 친족이 근무하는 대형로펌에 사건을 맡기는 방식으로 해당 대법관의 재판 참여를 인위적으로 막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권고의견 8호를 전원합의체 사건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특정 대법관의 재판참여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데 악용할 수 있게 된다"며 "실제로 대형로펌들이 이런 식으로 특정 대법관의 재판을 피한다는 지적도 변호사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전원합의체 재판에 권고의견 8호에 따라 심리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 김선수 대법관을 참여시킨 것도 이러한 부작용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명이 나온다.
김 대법관은 친동생의 부인이 이 사건의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어 원칙적으로는 권고의견 8호를 따르자면 재판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김 대법원장은 김 대법관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도록 한 취지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이 사건에 권고의견 8호를 적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김 대법관은 이 사건에서 오히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대리하는 일본 전범기업 측에 불리한 판단을 내렸다.
한 법원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의 조치는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측면과 함께 로펌 등이 악용할 수 있는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고민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hy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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