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응급구조사 "이상적인 중증환자 치료체계 포기 안 한 분"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윤한덕은 응급실에 온 중증환자가 절차 등의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할 때 그 울분을 가장 참지 못했어요."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헌신한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51)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 연휴 근무 중 숨졌다.
병원 응급실과 재난재해 현장에서 쪽잠을 자며 인술을 펼치고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등 제도 개선에 앞장서 왔던 윤 센터장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응급의학과 1호 전공의로 윤 센터장과 4년간 함께 수학했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허탁(55) 교수는 8일 "한덕이를 보면서 발전을 위한 변화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허 교수는 윤 센터장에 대해 "평소 나를 '탁형'이라 부르며 수더분한 구석이 있었지만, 의료 현실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이었던 친구"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근무 끝나고 밤늦게 병원 근처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유일한 여유였다. 많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같은 마음이지만 윤 센터장은 환자들을 제때 치료받게 해 살리려는 열망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환자가 병원에 실려 오는 동안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기 어려웠고 병원에 와서도 인턴, 레지던트, 교수 등을 거치며 중간 단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진료가 지체되는 경우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응급의료 진료 체계도 자리를 잡았다.
허 교수는 전국 500개 응급의료기관의 역할 정립과 국가응급의료전산망 구축, 응급의료 종사자 교육 등 지금의 그 틀을 만든 사람이 바로 윤 센터장이라고 말했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던 동료이자 함께 제도 개선을 고민했던 김건남(43) 병원응급구조사협회장(전남대병원 응급구조사)은 윤 센터장을 "전쟁터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살면서도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센터장님은 환자가 발생하는 병원 밖에서부터 응급의료 업무가 시작된다며 응급구조사들의 역할에 관심을 많이 갖고 조언해주셨고 관련법 개선을 위해 노력하셨다"고 전했다.
김 협회장은 "작고하시기 사흘 전에도 만나서 오는 13일 예정된 응급구조사 업무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하기로 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고인을 추모하고 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광대학교 외상외과 박찬용(45) 교수는 "본과 3, 4학년 시절 학생 실습 때 전공의였던 센터장님을 처음 만났다. 피로 때문에 항상 눈이 벌게져 있었지만, 환자를 살뜰히 챙기던 분이었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황달이 오르고 복수가 차오르는 간 혼수상태의 환자를 밤새 관장하며 응급실이 왜 '전쟁터'라고 불리는지 몸소 겪었던 박 교수는 이제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환자를 살피는 선배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박 교수는 "적정한 인력과 노동 강도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 사람 살리는 보람만으로 차마 후배들에게 함께 고난의 길을 걷자고 할 수 없다"며 응급의료 및 외상외과 인력 처우 개선과 국가 응급의료 정책을 담당함에도 국립중앙의료원 소속으로 묶여 있는 중앙응급의료센터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국종 교수가 기억하는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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