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첫 내한 공연…서른에 시작한 성악 공부로 세계적 테너 '우뚝'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아르헨티나 출신 세계적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스(57) 이름 앞에는 '제4의 테너' 혹은 '포스트 스리 테너'란 수식어가 붙는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의 '세계 3대 테너' 뒤를 이을 후보군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성악가 중 하나다.
알바레스는 오는 1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연다.
그는 10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러한 '이름'을 달고 활동해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날 규정하는 수식어를 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자신을 "음악의 기쁨을 전달하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노래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내게는 그게 전부"라고 했다.
그는 이런 "음악의 기쁨" 때문에 서른 즈음에 인생 경로를 성악으로 급변경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 합창단 활동을 하며 음악을 공부하긴 했지만 전문 가수를 꿈꾸진 않았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서른 이전까지 오페라 한 편을 제대로 감상한 적도 없다.
첫 직장은 가족이 운영하던 가구 공장이었으며 노래는 술집에서 팝가수나 록스타를 따라 하는 수준으로 즐겼을 뿐이었다.
서른에 늦깎이 오페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남편 재능을 눈여겨보던 아내의 권유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함께 음악을 공부했던 친구들도 그를 설득했다.
그는 "친구들 도움으로 몇몇 음악 관련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음악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내를 제외한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 고향 코르도바에서 700㎞ 떨어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악 수업을 받으며 꿈을 키워 나갔다.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펼쳐졌던 건 아니었다. 오페라 무대 오디션에 수차례 지원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테너 중 한명으로 꼽히는 주세페 디 스테파노(1921~2008)였다.
알바레스 오디션 과정을 심사위원으로 지켜본 디 스테파노는 "내 젊은 시절을 기억나게 한다. 이 젊은이는 가슴으로 노래를 한다. 장차 큰 가수가 될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는 디 스테파노에 대해 "아버지와도 같은 분"이라며 "노래하는 기술보다는 사람됨과 성악가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기억했다.
파바로티 역시 무명의 알바레스를 점찍었다.
파바로티는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파바로티 콩쿠르에서 알바레스를 처음 본 뒤 이듬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콩쿠르 결선 무대에 초청했다.
이 같은 거장들의 격려와 지지 아래 그는 본격적으로 유럽 오페라 시장에 뛰어들었고 주요 극장들을 하나씩 '접수'해 나갔다.
특히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라보엠'의 로돌포,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 '베르테르'의 베르테르 역 등으로 호평받았다.
서른에 성악 공부를 시작한 그는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런던 로열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 무대를 누비는 스타 테너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진로나 삶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딱 한 가지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가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무엇인가에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을 공부하기에 절대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첫 내한 공연에서는 그의 주요 레퍼토리를 감상할 수 있다. 오페라 '라보엠', '토스카', '카르멘', '투란도트' 등에서의 주요 아리아를 부른다.
그는 "현재 제 노래와 레퍼토리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곡들을 골랐다"며 "한국 관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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