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이도 "금주 계획 준비될 것"…마두로 "가짜 원조 쇼, 거지 아냐"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한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휩싸인 베네수엘라에서 해외 원조를 두고 여야 간에 다시 한번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등이 제공한 원조 물품의 국내 반입을 놓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정면 대립하면서 물리적 충돌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가수비대는 10일(현지시간) 유조 탱크와 화물 컨테이너를 동원해 콜롬비아 국경도시인 쿠쿠타와 베네수엘라 우레나를 연결하는 티엔디타스 다리를 여전히 봉쇄하고 있다.
이날 콜롬비아쪽 티엔디타스 다리 초입에서 20여명의 베네수엘라 의사가 원조 물품의 반입 허용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쿠쿠타에는 미국이 지원한 식품, 의약품 등 인도주의적 구호 물품 100t이 지난 7일 도착했다. 물품은 티엔디타스 다리 인근 저장창고에 쌓여 있는 상태다.
[로이터 제공]
미국은 인도주의 원조를 요청한 과이도 국회의장과 야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2천만 달러(약 225억원)어치의 비상 식품과 의약품 등을 보냈다. 캐나다는 4천만 달러의 원조를 약속했고, 유럽연합(EU)은 500만 유로의 원조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독일도 500만 유로의 지원을 결정했다.
과이도 의장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원조 물품의 배포를 도와달라고 촉구하면서 금주 중에 원조 물품의 반입과 배포를 위한 계획이 준비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 8일 대학생 집회에 참석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원조로도 현재의 식품 및 생필품난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25만∼30만명의 국민이 즉각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며 군부를 향해 반입 허용을 촉구한 바 있다.
야권은 오는 12일 대규모 시위를 개최해 마두로 정권을 상대로 원조 물품의 국내 반입을 다시 한번 압박할 계획이다.
베네수엘라 여야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놓고 정면 대립해왔다.
과이도 의장을 비롯한 야권은 많은 국민이 식품과 의약품, 기초 생필품 부족 등으로 고통받는 만큼 외국의 원조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마두로 정권은 미국 등 외세의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경 다리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반입을 막고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야권은 원조를 통해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의 우호적인 지지를 끌어내고 원조 물품 반입을 막는 군부에서 동요가 일어나기를 내심 바란다.
과이도는 "미국의 개입은 논란이 되는 사안이지만 인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할 것"이라며 마두로 정권의 퇴진과 인도주의 위기 완화를 위해 미국의 개입을 용인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은 미국이 경제난의 주요인 중 하나인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우선이며 원조를 계기로 미국이 군사 개입 등 내정간섭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우려한다.
미국이 '민주주의 회복' '인도주의 위기 해소' 등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속셈은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비롯해 금,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 이권을 통제하기 위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게 베네수엘라 정부의 판단이다.
마두로 정권이 미국의 원조를 '트로이 목마'로 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으로 이타카의 왕이었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의 배 안에 군사를 숨기는 계략을 써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때문에 '병주고 약주기식' 해외 원조 물품 반입 금지를 고수하는 마두로 정권의 입장은 단호하다.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정권 전복을 위해 기획되고 구경거리에 불과한 국제사회의 가짜 인도주의 원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라며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소량의 원조를 제공하면서 100억 달러에 이르는 해외 자산과 수입을 막기 위한 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을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라틴아메리카 지정학전략센터(CELAG)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미국과 동맹국이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부과한 경제·금융 제재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제재로 인한 상품 및 서비스 손실이 총 3천500억 달러(약 393조4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베네수엘라가 겪는 살인적인 물가상승과 식량과 생필품 부족 등과 같은 경제난이 현 정권의 비효율적인 경제 운용과 부패 등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외국의 경제 제재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많은 베네수엘라인이 해외로 이주하는 인도주의적 위기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경제 제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면서 "이런 경제·금융 공격은 대개 군사 개입의 전주곡"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만약 마두로 정부가 우파 정부가 들어선 뒤 3년간 아르헨티나에 제공된 금액만큼의 국제적인 금융 지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아르헨티나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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