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해외여행을 할 때 꼭 가고 싶은 곳이 그 지역 시장이다. 역사가 오래된 재래시장이라면 더 좋다. 시장은 현지인들이 자주 가고 그들의 삶이 가장 잘 투영되는 곳이다.
여행자로서 현지인 가정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주민들의 생활이 지역 특산물과 함께 고스란히 녹아있는 시장을 가 본다면 현지인 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어느 곳을 가든 여행에서는 이방인의 눈으로 현지인의 삶을 바라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외국에 갔다면 시장을 가 보자.
17세기 유럽의 경제적 패권을 쥔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일찌감치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한 이곳에서 1630년대 유례없는 호황이 찾아왔다.
당시 귀족과 신흥부자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이들은 16세기 말에 터키에서 들어와 수요가 급증하고 있던 튤립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튤립만 사면 가격이 치솟아 차익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튤립은 투기 광풍에 휘말렸다. 공급이 부족해지자 튤립의 뿌리를 살 수 있는 권리도 거래 대상이 됐다. '옵션거래'의 시초다. 튤립가격은 하루에 3배씩 오르기도 했고 튤립 한 뿌리를 집 한 채와 바꾸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몇 년 뒤 꽃값이 비정상적으로 비싸졌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튤립 가격은 대폭락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지금도 투기 거품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튤립 버블'이다.
버블은 오래전에 꺼졌지만, 네덜란드의 튤립은 여전히 세계적인 관심거리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대의 꽃 수출국이며, 세계 꽃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튤립은 80%를 생산한다. 자연히 수도 암스테르담은 지금도 꽃시장이 큰 볼거리다.
사방이 운하로 이어진 암스테르담. 그중 가장 오래된 싱겔운하를 따라 문트탑에서 코닝크스 광장까지 펼쳐진 싱겔 꽃시장은 싱그러운 꽃향기로 뒤덮인 '꽃의 천국'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빛깔의 튤립은 물론 백합, 해바라기, 나르시스 등 다양한 생화와 말린 꽃, 선인장, 씨앗, 구근, 분재 외에도 각종 기념품이 앞다퉈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가게마다 빼곡히 들어찬 갖가지 꽃들이 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져 있어 걷기만 해도 예쁜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오래 걸어 다리가 아프다면 곳곳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꽃을 구경해도 좋겠다.
가게마다 양파처럼 생긴 각종 알뿌리(구근)를 가득 담아놓은 상자에 다양한 꽃 사진을 꽂아 둔 것이 눈에 띈다. 뿌리 생김새는 비슷해도 피는 꽃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사진을 보고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또 운하 옆쪽에는 화려한 꽃 사진이 인쇄된 꽃씨봉투가 잔뜩 꽂힌 진열대가 있어 씨를 뿌려 꽃을 피우고 싶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꽃이 그려진 봉투마저도 꽃 못지않은 화려함을 뽐낸다.
아쉽지만 꽃씨와 생화, 구근의 국내반입은 금지된 경우가 많으니 구매에 주의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상징인 나막신 '클롬펀'을 잔뜩 매달아 놓은 가게도 있다.
색깔도 여러 가지고 크기도 1m가 넘는 대형 사이즈부터 보통 신발 크기, 앙증맞은 미니 나막신까지 다양해 기념품으로 구입하기 좋다.
나막신은 땅이 낮아 항상 물과 전쟁을 벌였던 네덜란드인들이 습기를 방지하고 발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신어왔는데 현재도 작업을 할 때나 농촌에선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치즈 가게도 많다. 둥그렇게 만든 대형 치즈들이 진열대에 줄지어 서서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싱겔 꽃시장은 암스테르담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늘 관광객과 현지인들로 북적인다. 그러면서도 항상 청결하고 밝은 분위기다. 농업선진국다운 시장 풍경이다.
시장을 떠나며 튤립 버블이 떠올랐다. 새삼스럽지만 꽃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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