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피해 수녀 동료 전출 시도·협박"…교계 내 대립도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지난해 현직 주교의 수녀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인도 천주교계가 해를 넘겨서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성폭행 혐의를 받는 주교가 직무에서 물러난 뒤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사건을 폭로한 수녀들에게 압력을 가하려 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11일 인도 NDTV 등 현지 언론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남부 케랄라 주(州)의 예수선교회 쿠라빌란가드 수녀원 소속 수녀 5명은 예수선교회가 최근 자신들 중 4명에게 다른 수녀원 전출 명령을 내린 점에 대해 10일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들은 북부 잘란다르 교구의 프랑코 물라칼 주교로부터 2년간 13차례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한 동료 수녀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인도 주재 교황청 대사 등에게 관련 내용을 편지로 보냈고, 지난해 6월에는 경찰에 고소장도 제출했다.
이후 물라칼 주교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있다. 현재 교구 직무에서는 손을 뗀 상태다.
하지만 이 주교는 여전히 교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성폭행 의혹을 은폐하려 하려 하고 자신들을 협박한다는 게 수녀들의 주장이다.
특히 물라칼 주교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예수선교회 고위층 신부가 성폭행 피해 수녀와 동료 수녀를 갈라놓기 위해 전출 명령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현재 잘란다르 교구를 맡은 안젤로 루피노 그라시아스 주교는 해당 수녀들에게 편지를 써 재판 절차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선교회 측은 교구가 수녀회 내부 일에까지 간섭할 수 없다며 맞서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출 명령을 받은 수녀 중 한 명은 "우리는 재판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쿠라빌란가드 수녀원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녀들은 물라칼 주교를 '포식자'(predator)라고 부르며 적어도 수녀 20명이 물라칼 주교의 성폭력 때문에 교회를 떠나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물라칼 주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날조된 이야기로 교회에 대한 음모"라고 반박하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이 수녀들 외에도 여러 명이 사제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케랄라 주의 파타남티타 지역에서는 신부 4명이 고해성사 때 얻은 정보 등을 이용해 여성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혐의로 피소됐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인도에서는 전체 인구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지만 남부와 동부 지역 위주로 약 2천만명의 천주교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일 교회 내에서 사제들이 수녀들을 대상으로 성적 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있음을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인정했다.
교황은 수녀들을 목표물로 삼는 사제들에 관한 질문을 받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신부들과 주교들이 있었다"며 "얼마 전부터 우리는 이것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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