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부정 맞서온 獨 정치권, 역사왜곡·혐오발언에 '단호'

입력 2019-02-12 06:10  

과거사 부정 맞서온 獨 정치권, 역사왜곡·혐오발언에 '단호'
극우 AfD, 역사왜곡 '노이즈 마케팅' 속 제도권 정치 세력화
기성 정치권, 극우 대응 골머리…감시강화, 대화상대 인정 고심
"獨, 사회가치 안맞는 주장 배제…5·18모독, 獨에선 용납안돼"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은 과거사 부정과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에 대한 견제 장치가 상당히 잘 갖춰진 국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등 전쟁 범죄를 뼈아프게 반성하며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온 결과다.
심지어 홀로코스트를 부정할 경우 법으로 처벌된다. 그뿐만 아니라 인종과 민족, 종교 등 특정 그룹에 대한 증오 발언도 처벌 대상이다.
독일의 이런 태도는 끊임없이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일본과 비교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 왜곡이나 헤이트 스피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독일의 사례가 조명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 발언을 접하면서 독일의 대응사례로 관심이 쏠린다.
독일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홀로코스트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연이어 보여줬다.
볼프강 쇼이블레 연방하원의장은 지난달 31일 하원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에서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미래의 기초로 독일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은 더 커진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비록 헌법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찾을 수는 없지만, 독일인들이 저질렀던 반(反)인류적 범죄에 대한 반성은 헌법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인 지난달 27일을 앞두고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 우리는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메르켈 총리와 쇼이블레 의장은 보수적 성향인 기독민주당 소속이다.
역대 독일 정부는 이념적 성향과 관계없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도 극우세력에 의한 과거사 부정 및 왜곡 시도는 계속돼 왔다.
특히 최근엔 극우성향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주요 정치인들이 잇따라 과거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AfD의 알렉산더 가울란트 공동대표는 지난해 6월 청년당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는 독일의 성공적인 1천 년 역사에서 단지 '새똥의 얼룩'과 같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나치가 집권한) 12년에 대해 책임을 졌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빌어먹을 12년 이상인 영광의 역사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나치 집권기의 과오를 축소하려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독일 사회에서 쏟아졌다.
뵈른 회케 AfD 튀링겐주(州) 대표는 2017년 1월 수도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대해 "독일인들은 수도 한복판에 치욕의 기념물을 건설한 세계 유일한 민족"이라며 "우리의 마음가짐은 아직 완전한 패배자의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우리는 기억의 정치를 180도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케는 지난해 독일 동부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주의자들의 대규모 시위 때 선봉에 서기도 했다.
독일의 기성 정치권뿐만 아니라 언론, 시민사회는 AfD의 이러한 과거사 왜곡 및 부정 시도에 대해 십자포화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AfD는 오히려 과거사 왜곡 및 부정 시도, 인종차별적인 발언 속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성공한 셈이었다.
그들은 신생 극우 매체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파했다.
그 여파로 AfD는 2017년 9월 총선에서 12.6%의 득표율로 제3정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에도 바이에른주와 헤센주 선거에서 선전하며 독일 연방 16개 주 의회에 모두 진출했다.
기성정당은 AfD의 선전에 당황했고 그 대응방안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 내부에서는 보수파가 AfD를 의식해 강경한 난민대책을 들고나오면서 파열음을 냈다.
대체로 차분한 토론 문화를 보여주던 하원의 풍경도 바뀌었다.
하원에서 메르켈 총리가 발언하면 AfD 의원들은 연신 야유를 보냈다.
기성 정치권은 일단 AfD를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연정협상에서 AfD는 철저히 제외됐다. 기성 정당들은 정책과 법안을 놓고서도 AfD와의 협력을 외면했다.
과거사 왜곡과 혐오 발언에 대한 감시와 경계도 한층 강화됐다.
국내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BfV)은 최근 AfD 내 청년 조직 등에 대해 헌법 격인 기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적극적으로 감시하기 시작했다. 역사 왜곡 발언을 한 회케 또한 BfV가 주시하고 있다.
정치권이 소셜미디어에서의 증오·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법인 '소셜네트워크(SNS) 내 법 집행 개선법'(SNS위법규제법·NetzDG)을 처리해 지난해부터 적용한 데에는 AfD를 견제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AfD는 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개정 시도를 하며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정치학)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5·18 모독 발언은 독일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독일 정치권은 사회적 가치상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을 스스로 배제한 채 대화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fD가 반(反)난민 정서와 기성정당에 대한 염증 등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면서 기성정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AfD도 하원에 진입한 후에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의원에 대해 자체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등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해 11월 연방하원 한 위원회의 한반도 관련 회의에서 한반도 상황에 대해 완고한 의견을 피력한 AfD 의원에게 화를 냈더니, 좌파당의 한 의원이 '그렇게 해서는 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기성 정치권도 하원에서 AfD와 기본적인 대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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