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심리학 개척' 성영신 교수 퇴임…"존재로서의 삶 살 것"

입력 2019-02-13 08:11  

'소비자심리학 개척' 성영신 교수 퇴임…"존재로서의 삶 살 것"
고려대 사상 첫 여성 보직교수…소비자·광고 심리학 권위자
'남성 문화' 깨고 다양성위원회 설립 기여…"학부전환으로 융합학문 정체성 구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학생들을 가르치며 참 행복한 인생을 살았어요. 특히 제자들이 고맙게 잘 따라줘서 교수로서 인생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연구실에서 만난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저 말고도 30년 이상을 한 일에 매진한 사람이 많을 텐데…"라며 겸양의 미소를 보였다.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성 교수는 소비자 구매심리, 윤리 소비 등 주제를 연구해 온 소비자·광고 심리학의 권위자로 꼽힌다.
1972년 고려대 심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7년 모교 교수로 임용됐다.
또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장, BK21 뇌 기반 심리학 사업단장, 한국소비자학회장, 한국심리학회장, 공정거래위원회 표시·광고 심사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그는 교내외에서 쌓은 공로로 명예교수로 추대될 예정이다.
특히 심리학계에서 선구적 위치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고려대 심리학과가 심리학부로 전환하는 데는 성 교수의 역할이 컸다.
고려대 이사회는 지난 12일 문과대 소속 심리학과를 독립된 심리학부로 전환하는 안을 승인했다. 심리학과가 독립된 학부로 전환하는 것은 국내 대학 가운데 최초다.

성 교수는 앞서 학부제 전환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학과 건물 신축 기금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사회 승인 소식을 들은 성 교수는 "심리학부 전환은 10년을 준비해온 숙원사업이었다"며 반겼다.
그는 "심리학이 굉장히 융합적 특성을 가진 학문인 만큼 단과대학(문과대)의 틀을 벗어나 우리만의 학문적 아이덴티티를 구현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학부제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성 교수는 "심리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라 주제는 인문학적이지만 연구 방법은 철저히 과학적이어야 한다"며 "특히 2000년대 들어 뇌 과학이 접목되며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심리학의 비중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고려대 심리학과 15명의 교수 가운데 약 3분의 1은 인문사회과학, 나머지 3분의 1은 자연과학 측면에서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또 다른 3분의 1은 성격심리학이나 개인의 건강한 삶을 주된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고 성 교수는 전했다.
학부제 전환으로 향후 심리학부에서는 문과뿐 아니라 이과 전공 학사 학위도 취득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성 교수는 32년 교직 생활의 가장 보람된 경험의 하나로 고려대 다양성위원회 설립을 꼽았다.
최근 고려대 대학본부는 다양성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으며 위원장 등 조직 인선을 앞두고 있다.
다양성위원회는 향후 총장 직속 자문기구로서 교내에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가게 된다.

성 교수는 2005년 12월 학생처장에 임명될 당시 고려대 개교 100년 만의 첫 여성 보직 교수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성 교수는 "첫 여성 보직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게 기쁨이면서 의무감이었다"며 "흔히 '막걸리 문화'로 상징되는 고려대에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벗어나 양성평등과 다양성을 구현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에 성 교수를 주축으로 한 교수들은 그동안 다양성위원회 설립을 추진해왔으며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
성 교수는 "다양성위원회 설립을 추진하며 단순히 다양성의 가치를 구현하자는 목표뿐 아니라 다양성의 구현이 학교발전과 구성원의 만족에 실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입증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며 "정치·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학이 가장 먼저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퇴임 후 계획을 묻자 그는 "정년퇴임 후에 꼭 뭔가를 해야 하나요?"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성 교수는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인용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은 소유(having)나 행위(doing)에 있는 게 아니다"면서 "이제는 존재(being) 그 자체로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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