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전 조·미 철도부설 협상안 담은 외교자료 나왔다(종합)

입력 2019-02-13 16:43  

130년전 조·미 철도부설 협상안 담은 외교자료 나왔다(종합)
독립운동가 이상재 유품 8건,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미활동 생생하게 알려주는 자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자주적 근대화를 꿈꾼 조선이 경인선이 완공된 1899년보다 10여년 이른 1888년 미국 측으로부터 제안받은 철도 부설 협상안이 담긴 문서가 나왔다.
미국 뉴욕 법관 '딸능돈'(달링턴 추정) 등이 1888년 조선기계주식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등 설치를 제안하면서 작성한 규약과 약정서 초안인 '미국인약초'(美國人約艸)다.
이 문서는 그해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돼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미국에 간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가 쓴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에 수록됐다.
박정양이 주미전권공사로 발탁돼 귀국하기까지 정황을 소상히 적은 '미행일기'(美行日記)에는 고종이 철도약장(鐵道約章)의 가부를 빨리 알려달라고 재촉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 구체적 내용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이상재 종손인 이상구(74) 씨가 5대째 물려받아 보관해 온 이상재 유품인 '미국공사왕복수록', '미국서간'(美國書簡) 등 옛 문헌과 사진 8건을 13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고궁박물관에 기증된 이상재 유품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전시관으로 개관한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공사를 하던 중 건물과 관련된 고증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확인됐다.
충남 서천 출신인 이상재는 1881년 일본 신사유람단장을 맡은 박정양을 수행했고, 이후 미국행도 함께했다. 그는 1888년 1월 미국에 도착해 그해 11월 청의 압력으로 귀국했으나, 주미공사관 개설을 위해 힘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기증 유물 중 공관원 업무편람이라고 할 만한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은 학계에 최초로 소개되는 자료로, 조선과 미국의 외교 현안을 비롯해 공사관 운영 상황과 공관원 활동상이 상세히 기록됐다.
미국인약초는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조선)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로 시작하며 "15년을 기한으로 한다"고 못 박았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은 "경인선은 조선이 1896년 미국인 모스에게 부설권을 허가하고, 모스가 이듬해 5월 부설권을 넘겼다고 알려졌다"며 "미국공사왕복수록을 통해 조선이 1880년대에도 미국과 철도 부설을 논의했고, 관련 계약서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미국인약초가 철도약장의 초안일 가능성이 크고, 박정양은 고종에게 관련 사항을 보고했을 것"이라며 "참찬관 호러스 앨런은 아주 좋은 제안이라고 평가했지만, 박정양은 15년 기한과 토지 무상 제공이 불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고종이 박정양에게 철도약장에 관한 의견을 요구했다는 점으로 보아 철도에 관심이 컸다"며 "고종은 철도 개설로 경제를 부흥하고 미국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에는 1883년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이 루시우스 푸트 초대 주한 공사를 파견하며 고종에게 건넨 외교문서, 박정양이 미국 정부·관계자와 주고받은 문서, 조선이 주미공사관을 통해 추진한 사업 관련 문서, 독일공사관·일본공사관 관련 문서도 수록됐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한 편지 38통을 묶은 사료다. 서간은 대부분 집안일에 관한 내용이지만, 공사관 운영 실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예컨대 "미국 풍속은 민(民)을 주권으로 삼는다. 소위 군주는 4년마다 교체되고, 인민이 회의해서 차출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권한이 없고, 오로지 민의를 주로 삼을 뿐이다"라거나 "공관은 매년 임대료를 780원씩으로 정하고 입주하였다. 관내의 일용 집기는 1천5백여원으로 구입해두었다. 조·석반은 관내에서 지어 먹는다"고 적었다.
또 "소위 미국 물정은 이곳에 온 이후 언어와 문자가 모두 통하지 않아서 듣거나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두 자료 이외에 '미행일기' 초록으로 추정되는 문헌과 공사관 재직 시 업무 메모, 이상재가 세상을 떠난 뒤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책인 '월남 이상재'도 고궁박물관에 기증됐다.
워싱턴에서 촬영한 이상재 사진, 이하영 서리공사 사진과 공사관원 강진회로 추정되는 사진도 함께 전달됐다.
이상구 씨는 "해독하기 어려운 고조 유품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재단에서 연락이 와 기증을 결정했다"며 "자료가 잘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상재 유품은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미활동을 생생하게 알려준다"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관원들이 직접 기록한 자료가 발굴돼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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