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박서영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시집 3권이 잇따라 출간됐다.
문학동네에서 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를 내놨고, 걷는사람에서는 유고 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와 절판됐던 첫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를 선보였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박 시인은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언어로 문단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생전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와 '좋은 구름'을 냈고, 사후 두권의 시집이 나왔다.
유고 시집 원고는 박 시인이 작고한 후 평소 가깝게 지냈던 성윤석 시인에 의해 출판사에 전달돼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박 시인은 평소 삶 한가운데 육박해 들어와 있는 죽음의 이미지를 시에 많이 투영했고, 이번 시집들도 비슷한 맥락을 보인다.
다만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늘 생에 향해 있던 그의 뜨거운 시선은 이번 시집들에서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에서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다가온다.
'생각이 깊어 슬픔이 탯줄처럼 길어지는 사이 / 순천의 한 여관방에서 / 분홍색 목젖에 울음이 매달려 흔들린다 / 한 호흡만 더 건너가자, 생이여 / 추운 앵두나무를 몸 안에 밀어 넣고 있는 / 환한 가로등처럼'('울음의 탄생' 부분)
그는 감상에 빠지지 않은 정제되고 단정한 모습으로 슬픔을 그려내지만, 그 쓸쓸함은 오히려 읽는 사람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돌연 우리 곁을 떠난 박 시인을 두고 김재근 시인은 "그가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난 것은 그가 몸 안에 '천국'을 너무 많이 지니고 있어서 그 '천국'을 돌려주러 간 게 분명해 보인다"고 적었다.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에는 온갖 사랑의 모습과 그로부터 이별하는 과정이 가득하다.
그가 써 내려간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세상살이를 겪음에 있어 주체성, 그 능동적이면서 유연한 의연함을 대신한 것이다.
'슬픔은 성게 같은 것이다 / 성가셔서 쫓아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 무심코 내게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찾아간 것도 아니다 / 그런데 성게가 헤엄쳐 왔다 / 온몸에 검은 가시를 뾰족뾰족 내밀고. 누굴 찌르려고 왔는지 (…) 실종은 왜 죽음으로 처리되지 않나 / 영원히 기다리게 하나 / 연락두절은 왜 우리를 / 노을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항구에 앉아 있게 하나 (…) 꽃나무 한 그루도 수습되지 않는 / 이런 봄밤에 / 저, 저 떠내려가는 심장과 검은 성게가 / 서로를 껴안고 어쩔 줄 모르는 밤에'('성게' 부분)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시는 절망적이지도, 비참하지도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뜨겁게 받아들인 용기로 가득하다.
시인의 말('오늘의 믿음' 부분)도 평생 사랑하고, 그 사랑을 노래한 시인에게 죽음조차도 사랑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만이 찬란하다는 말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내게 헤엄쳐 왔을 때 죽음을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장의사의 심정을 이해한 적 있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 물결들이 써 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걷는사람 관계자는 "박 시인이 동시집과 에세이 원고도 남겨 추후 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bookman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