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속 3·1 운동] ⑤ 샌프란發 대서특필…美서 대일여론전 '포문' 열다
일본의 야만성 직접 목도한 '르포'…"독립시위는 민족자결의 경이로운 사례"
'총칼에 쓰러진 한국민·日경찰 미화' 기사 극명대비, 日여론조작 부각
女종군기자, 여학생 인권유린'분노의 고발'…'3시간에 1천명 학살' 기사도
※ 편집자주 = "조선 독립 만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반도 전역을 울렸던 이 함성은 '세계'를 향한 우리 민족의 하나 된 외침이었습니다. 한민족이 앞장서 '행동'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의 각 민족을 자각시켜 함께 전 세계적 독립운동을 끌어가자는 외교적 호소였습니다. 강대국의 이권 다툼이 판치던 당시 국제질서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자격을 얻었던 일본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고만장하던 일본이 두려워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외신 보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3.1운동 초기 보도통제와 '프레임 조작'으로 관련 보도를 막는 데 그야말로 전력투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이지, 진실을 감출 순 없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중국 상하이(上海)로부터 시작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D.C.에 이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상파울루, 싱가포르로 3·1운동 소식은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길지 않은 기사도 많았지만 이에 자극받은 각 식민지 국가에서는 앞다퉈 독립선언문이 나오면서 민족적 독립운동이 촉발됐습니다. 비록 한민족이 '자립'(自立)에는 실패했지만, 외신의 창(窓)을 통해 민족 자결과 독립에 대한 세계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포진한 특파원망을 총동원해 당시 외신 보도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지금까지 3·1운동을 보도한 외신 일부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세계 주요국 별로 보도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굴해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관련기사>
[외신속 3·1 운동] ① 그 날 그 함성…통제·조작의 '프레임' 뚫고 세계로 [http://www.yna.co.kr/view/AKR20190207090000009?input=1195m]
[외신속 3·1 운동] ② 日언론엔 '폭동'뿐…총독부 발표 '앵무새' 전달 [http://www.yna.co.kr/view/AKR20190213157000073?input=1195m]
[외신속 3·1 운동] ③ 상하이서 첫 '타전'…은폐 급급하던 日, 허 찔렸다 [http://www.yna.co.kr/view/AKR20190214084600097?input=1195m]
[외신속 3·1 운동] ④ 韓人 여학생이 띄운 편지, '대륙의 심금'을 울리다 [http://www.yna.co.kr/view/AKR20190208154700089?input=1195m]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새크라멘토 비(Bee) 발행인 V.S.매클래치가 오랜 동방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3월 초 한국에서 독립봉기가 시작될 때 그곳에 있었고 일본 군대에 의해 한국민들에게 자행된 야만성을 목도했다. 여태껏 미국 독자들이 접하지 못한 정복된 왕국에서의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San Francisco Examiner)는 1919년 4월 6일 일요일자 1면 머리기사로 '한국의 비무장 봉기'(Korean Uprising An Unarmed Revolt)를 실었다.
캘리포니아의 발행인이 '최초로 검열받지 않은'(First Uncensored) 뉴스를 들고 왔다는 부제를 붙였다.
◇ 1면 전체 털고 4면으로 이어진 '한국의 독립봉기'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코리안 아메리칸 디지털 아카이브'에 보관된 이 기사는 눈에 확 들어오는 톱 스토리인데다 흔치 않은 '전면'(全面) 기사다.
1면 전체를 3·1 운동 소식에 할애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다 실지 못한 기사는 4면으로 넘겨 이어진다.
1919년 3월 10일 '오클랜드 트리뷴'을 비롯해 미국 신문사들이 다룬 3·1 운동 기사의 출처는 상하이에서 날아온 전보와 상하이·베이징의 AP통신 등 통신사 특파원·주재원의 '전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필자가 장문의 기고 형태로 쓴 일종의 '현장 르포'로 볼 수 있다.
기사는 당시 일본이 간악한 보도통제로 세계인을 속이려 한 정황을 차분한 톤으로 고발한다. 필자가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기사가 해외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해 가택수색과 검문이 있었고 도움을 주던 YMCA 직원 2명이 체포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평상복을 입은 일본 형사 2명이 따라붙었다고 한다.
매클래치는 1919년 3월 17일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서울과 전국 각지를 돌면서 '목격 기사'(eye-witness story)를 작성했다. 거리에서 독립선언문을 읽던 여학생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수천 명이 체포된 사실을 전했다. 일본군의 소총(musket) 끝에는 검(劍)이 달렸다고 묘사했다.
기사는 특히 3·1 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일깨웠다. 서방세계가 3월 1일 한국에서 시작된 독립봉기의 발생과 그 의미, '진짜 팩트'를 몰랐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한국의 독립시위는 아마도 민족자결과 이상의 실현을 위한 조직화한 소극적 저항의 '가장 경이로운 사례'(the most wonderful instance)임을 서방세계는 미처 몰랐다"라고 평가했다.
기사에는 이어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한국의 시위가 궁극적으로 일본의 정책, 나아가 미래 극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부제에 '일본의 정책은 그 결과로 틀림없이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담았다.
고종의 죽음과 국장일(3월 3일), 이를 받아들이는 한국 민중의 반응, 민족 지도자 33인의 움직임, 천도교의 가세까지 꼼꼼히 살펴나간 필자는 당시 일본 언론에 조작된 관제기사가 실린 사실도 비판한다.
봉기에 나선 한국인들이 군경에 대한 보복적 폭력이나 재물 약탈 행위를 한 일이 전혀 없음에도 일본 헌병들(gendarmes)을 죽였다는 거짓 정보가 서울의 몇몇 특파원 이름으로 일본 언론에 채워졌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발렌틴 스튜어트 매클래치는 19세기 중반 샌프란시스코에서 '새크라멘토 비'를 창간한 매클래치 가문의 창업 2세다. 그는 기자이자 발행인으로 활동했으며 1920년대에는 반일(反日) 팸플릿을 만든 기록이 남아있다.
20세기 초 캘리포니아 북부에선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새크라멘토 비 등의 일간지가 여론을 주도했다.
당시 미국 서부에는 '반일'(反日) 정서가 강했다고 한다.
미주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1차대전 승전 이후 점점 늘어가는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에 반감이 많았다.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을 제정할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 '3·1 운동 대서특필'이 이뤄진 배경에는 대한인국민회의 '여론전'도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장 교수는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에 전문이 전달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910년대에 꾸준히 기반을 닦아온 대한인국민회는 현지 지역 언론에 어느 정도 여론전을 펼칠 만큼 저변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대한인국민회는 1910년 미국에서 결성된 항일독립단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3대 회장을 맡았다.
◇ 하나의 기사에 언급된 '투 버전'(Two Version) 스토리
1919년 4월 26일 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의 기사 제목은 의외였다. '한국에서의 봉기, 통신원이 전해온 폭동의 두 가지 버전으로'라는 의아한 제목이 붙었다.
AP통신 특파원 전문을 전재한 것으로 보이는 이 기사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 시작되는 본문은 한국 독립운동의 목격자 증언을 전한다.
그저 '조선 독립 만세'라고 외쳤을 뿐 아무런 행동도, 무장도 하지 않은 시위자들이 일본 군경이 휘두른 곤봉과 검, 소총 개머리판에 두들겨 맞고 포승줄에 묶여 경찰서로 끌려갔다는 내용이다.
여학생들은 더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전한다. 감옥에 갇혀 옷이 벗겨지고 일본 경찰이 여성들을 조롱했다고 고발한다.
선교사 에플린 M.로버츠는 기사에서 "7명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여성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돌도, 막대기도 없었다. 빈손으로 있다가 쓰러져갔다"라고 증언했다.
시신 두 구가 소달구지에 늘어진 채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는 증언도 있다. 일본 경찰이 군중을 향해 흩어지라며 돌을 던졌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기사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시작된다.
'폭동의 일본 버전'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평양에서 목격자들이 전하는 바로는 한국에서 시위자들이 경찰서에 돌을 던지고 시위꾼 중 다수는 저고리 품에 도끼와 칼을 숨긴 채 무장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시작된다.
이런 폭력 시위 때문에 군대와 경찰이 부득이하게 '자위권' 차원에서 소총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시위가 반란으로 퍼지고 있다는 설명도 붙었다.
평양의 한 좁은 다리에 수백 명의 한국인이 몰려들었는데 15명밖에 되지 않는 일본 경찰관들은 소총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는 기사 내용이 이어진다. 일본 무술인 유도, 주지츠(ju-jitsu)로 시위대를 진압했다며 일본 경찰을 미화하는 대목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전혀 다른 두 버전의 기사를 하나의 기사에다 병렬적으로 늘어놓은 이유를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신문 편집자는 모름지기 일본의 교묘한 여론조작을 극명하게 대비해 미국 독자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첫 여성 종군기자의 활약…여성 학대 고발
USC 아카이브에 보관된 3·1 운동 기사 중에는 1차 대전 당시 미 전쟁 담당부처가 승인한 최초의 여성 종군 특파원인 페기 헐(1889~1967)의 기사가 눈에 띈다.
헐은 특유의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서 맹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8년에는 시베리아로 파견돼 기사를 썼다.
기사에는 뉴스페이퍼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션(NEA)의 여성 전쟁 특파원(Girl War-Correspondent)으로 시베리아에서 막 돌아온 헐이 '한국에서 일본의 잔악상을 전한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헐은 "볼셰비키의 잔혹함으로 점철된 세계전쟁의 와중에, 한국에서 작은 혁명이 피어났다가 금세 진압됐다"며 3·1 운동 발생 소식을 비교적 담담하게 전했다.
하지만, 한국의 여학생들이 웨스트 게이트 감옥(서대문 교도소인 듯)에서 일본 경찰들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장면에서는 여성 특파원으로서의 분노가 표출됐다.
"처음엔 금 수술(장식)을 매단 경관 앞에서 옷을 벗도록 강요당했다. 그리고는 16명의 소녀와 함께 갇혔다. 돼지우리나 다름없었다. 먹을 것이라곤 콩과 소금만 나왔다. 다음날 경찰 의무관이 오더니 더 치욕적인 신체검사를 했다. 옷을 벗자 그들은 다시 우리를 조롱했다"라고 밝힌 한 여학생의 증언을 전했다.
헐은 투옥된 한국 여성들이 용변도 보지 못한 채로 갇혀있고, 140명이 한 욕조에서 구정물에 목욕해야 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 1만 명 대학살 기록…3시간 만에 1천 명 학살도
3·1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는 7천500여 명, 부상자는 1만6천여 명, 체포된 사람은 4만6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 언론에도 '대학살'(Massacre)이란 표현과 함께 일본 군대·경찰에 의해 살해된 한국인의 숫자를 전하는 당시 기사가 남아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상하이에서 온 전문을 토대로 3월 28일 서울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불과 3시간여 만에 1천 명이 넘는 한국인이 학살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이 한국에서 대학살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1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사망했고 5만여 명이 부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5만여 명이 체포됐으며, 그중 1천여 명이 여성이었다는 단락도 있다.
◇ 주간지엔 사진·만평…십자가에 묶이고, 낚싯대에 걸린 한국인
19세기에 창간됐다가 1930년대 폐간한 미국 주간지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The Litrerary Digest)는 1919년 5월 31일 자에 한국인들이 오로지 '등사판 인쇄물'(Mimeograph)이란 하나의 무기만 들고 저항에 나섰다가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등사판 인쇄물은 3·1 독립선언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는 중앙에 '1919년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s in 1919)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렸다.
십자가에 묶여 처형 직전인 한국인 3명을 일본 군인들이 지켜보는 장면이다.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한국인 희생자들이 양팔을 조악한 십자가에 묶인 채 무릎 꿇고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사진 설명을 달았다.
같은 주간지에는 '일본 판화'(A Japanese Print)라는 제목의 만평도 게재됐다.
'댈러스 뉴스' 특약으로 표기된 듯한 만평에는 전통 무사 복장에 왜나막신(게다)을 신은 일본인이 낚시 갈고리에 한국인을 걸어 둘러멘 채로 호수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등장한다.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일본의 잔인한 압제는 2천만 한국민의 분노만 더 격렬하게 만드는 동시에 극동을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oakchu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일본의 야만성 직접 목도한 '르포'…"독립시위는 민족자결의 경이로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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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 "조선 독립 만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반도 전역을 울렸던 이 함성은 '세계'를 향한 우리 민족의 하나 된 외침이었습니다. 한민족이 앞장서 '행동'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의 각 민족을 자각시켜 함께 전 세계적 독립운동을 끌어가자는 외교적 호소였습니다. 강대국의 이권 다툼이 판치던 당시 국제질서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자격을 얻었던 일본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고만장하던 일본이 두려워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외신 보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3.1운동 초기 보도통제와 '프레임 조작'으로 관련 보도를 막는 데 그야말로 전력투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이지, 진실을 감출 순 없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중국 상하이(上海)로부터 시작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D.C.에 이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상파울루, 싱가포르로 3·1운동 소식은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길지 않은 기사도 많았지만 이에 자극받은 각 식민지 국가에서는 앞다퉈 독립선언문이 나오면서 민족적 독립운동이 촉발됐습니다. 비록 한민족이 '자립'(自立)에는 실패했지만, 외신의 창(窓)을 통해 민족 자결과 독립에 대한 세계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포진한 특파원망을 총동원해 당시 외신 보도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지금까지 3·1운동을 보도한 외신 일부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세계 주요국 별로 보도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굴해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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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속 3·1 운동] ① 그 날 그 함성…통제·조작의 '프레임' 뚫고 세계로 [http://www.yna.co.kr/view/AKR20190207090000009?input=1195m]
[외신속 3·1 운동] ② 日언론엔 '폭동'뿐…총독부 발표 '앵무새' 전달 [http://www.yna.co.kr/view/AKR20190213157000073?input=1195m]
[외신속 3·1 운동] ③ 상하이서 첫 '타전'…은폐 급급하던 日, 허 찔렸다 [http://www.yna.co.kr/view/AKR20190214084600097?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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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새크라멘토 비(Bee) 발행인 V.S.매클래치가 오랜 동방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3월 초 한국에서 독립봉기가 시작될 때 그곳에 있었고 일본 군대에 의해 한국민들에게 자행된 야만성을 목도했다. 여태껏 미국 독자들이 접하지 못한 정복된 왕국에서의 얘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San Francisco Examiner)는 1919년 4월 6일 일요일자 1면 머리기사로 '한국의 비무장 봉기'(Korean Uprising An Unarmed Revolt)를 실었다.
캘리포니아의 발행인이 '최초로 검열받지 않은'(First Uncensored) 뉴스를 들고 왔다는 부제를 붙였다.
◇ 1면 전체 털고 4면으로 이어진 '한국의 독립봉기'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코리안 아메리칸 디지털 아카이브'에 보관된 이 기사는 눈에 확 들어오는 톱 스토리인데다 흔치 않은 '전면'(全面) 기사다.
1면 전체를 3·1 운동 소식에 할애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다 실지 못한 기사는 4면으로 넘겨 이어진다.
1919년 3월 10일 '오클랜드 트리뷴'을 비롯해 미국 신문사들이 다룬 3·1 운동 기사의 출처는 상하이에서 날아온 전보와 상하이·베이징의 AP통신 등 통신사 특파원·주재원의 '전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필자가 장문의 기고 형태로 쓴 일종의 '현장 르포'로 볼 수 있다.
기사는 당시 일본이 간악한 보도통제로 세계인을 속이려 한 정황을 차분한 톤으로 고발한다. 필자가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기사가 해외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해 가택수색과 검문이 있었고 도움을 주던 YMCA 직원 2명이 체포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평상복을 입은 일본 형사 2명이 따라붙었다고 한다.
매클래치는 1919년 3월 17일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서울과 전국 각지를 돌면서 '목격 기사'(eye-witness story)를 작성했다. 거리에서 독립선언문을 읽던 여학생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수천 명이 체포된 사실을 전했다. 일본군의 소총(musket) 끝에는 검(劍)이 달렸다고 묘사했다.
기사는 특히 3·1 운동의 '세계사적 의미'를 일깨웠다. 서방세계가 3월 1일 한국에서 시작된 독립봉기의 발생과 그 의미, '진짜 팩트'를 몰랐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한국의 독립시위는 아마도 민족자결과 이상의 실현을 위한 조직화한 소극적 저항의 '가장 경이로운 사례'(the most wonderful instance)임을 서방세계는 미처 몰랐다"라고 평가했다.
기사에는 이어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한국의 시위가 궁극적으로 일본의 정책, 나아가 미래 극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부제에 '일본의 정책은 그 결과로 틀림없이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담았다.
고종의 죽음과 국장일(3월 3일), 이를 받아들이는 한국 민중의 반응, 민족 지도자 33인의 움직임, 천도교의 가세까지 꼼꼼히 살펴나간 필자는 당시 일본 언론에 조작된 관제기사가 실린 사실도 비판한다.
봉기에 나선 한국인들이 군경에 대한 보복적 폭력이나 재물 약탈 행위를 한 일이 전혀 없음에도 일본 헌병들(gendarmes)을 죽였다는 거짓 정보가 서울의 몇몇 특파원 이름으로 일본 언론에 채워졌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발렌틴 스튜어트 매클래치는 19세기 중반 샌프란시스코에서 '새크라멘토 비'를 창간한 매클래치 가문의 창업 2세다. 그는 기자이자 발행인으로 활동했으며 1920년대에는 반일(反日) 팸플릿을 만든 기록이 남아있다.
20세기 초 캘리포니아 북부에선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새크라멘토 비 등의 일간지가 여론을 주도했다.
당시 미국 서부에는 '반일'(反日) 정서가 강했다고 한다.
미주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UC리버사이드) 장태한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1차대전 승전 이후 점점 늘어가는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에 반감이 많았다.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을 제정할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 '3·1 운동 대서특필'이 이뤄진 배경에는 대한인국민회의 '여론전'도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장 교수는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에 전문이 전달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1910년대에 꾸준히 기반을 닦아온 대한인국민회는 현지 지역 언론에 어느 정도 여론전을 펼칠 만큼 저변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대한인국민회는 1910년 미국에서 결성된 항일독립단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3대 회장을 맡았다.
◇ 하나의 기사에 언급된 '투 버전'(Two Version) 스토리
1919년 4월 26일 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의 기사 제목은 의외였다. '한국에서의 봉기, 통신원이 전해온 폭동의 두 가지 버전으로'라는 의아한 제목이 붙었다.
AP통신 특파원 전문을 전재한 것으로 보이는 이 기사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처음 시작되는 본문은 한국 독립운동의 목격자 증언을 전한다.
그저 '조선 독립 만세'라고 외쳤을 뿐 아무런 행동도, 무장도 하지 않은 시위자들이 일본 군경이 휘두른 곤봉과 검, 소총 개머리판에 두들겨 맞고 포승줄에 묶여 경찰서로 끌려갔다는 내용이다.
여학생들은 더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전한다. 감옥에 갇혀 옷이 벗겨지고 일본 경찰이 여성들을 조롱했다고 고발한다.
선교사 에플린 M.로버츠는 기사에서 "7명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여성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돌도, 막대기도 없었다. 빈손으로 있다가 쓰러져갔다"라고 증언했다.
시신 두 구가 소달구지에 늘어진 채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는 증언도 있다. 일본 경찰이 군중을 향해 흩어지라며 돌을 던졌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기사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시작된다.
'폭동의 일본 버전'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평양에서 목격자들이 전하는 바로는 한국에서 시위자들이 경찰서에 돌을 던지고 시위꾼 중 다수는 저고리 품에 도끼와 칼을 숨긴 채 무장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시작된다.
이런 폭력 시위 때문에 군대와 경찰이 부득이하게 '자위권' 차원에서 소총을 사용한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시위가 반란으로 퍼지고 있다는 설명도 붙었다.
평양의 한 좁은 다리에 수백 명의 한국인이 몰려들었는데 15명밖에 되지 않는 일본 경찰관들은 소총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는 기사 내용이 이어진다. 일본 무술인 유도, 주지츠(ju-jitsu)로 시위대를 진압했다며 일본 경찰을 미화하는 대목이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전혀 다른 두 버전의 기사를 하나의 기사에다 병렬적으로 늘어놓은 이유를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신문 편집자는 모름지기 일본의 교묘한 여론조작을 극명하게 대비해 미국 독자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첫 여성 종군기자의 활약…여성 학대 고발
USC 아카이브에 보관된 3·1 운동 기사 중에는 1차 대전 당시 미 전쟁 담당부처가 승인한 최초의 여성 종군 특파원인 페기 헐(1889~1967)의 기사가 눈에 띈다.
헐은 특유의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서 맹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8년에는 시베리아로 파견돼 기사를 썼다.
기사에는 뉴스페이퍼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션(NEA)의 여성 전쟁 특파원(Girl War-Correspondent)으로 시베리아에서 막 돌아온 헐이 '한국에서 일본의 잔악상을 전한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헐은 "볼셰비키의 잔혹함으로 점철된 세계전쟁의 와중에, 한국에서 작은 혁명이 피어났다가 금세 진압됐다"며 3·1 운동 발생 소식을 비교적 담담하게 전했다.
하지만, 한국의 여학생들이 웨스트 게이트 감옥(서대문 교도소인 듯)에서 일본 경찰들에게 당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장면에서는 여성 특파원으로서의 분노가 표출됐다.
"처음엔 금 수술(장식)을 매단 경관 앞에서 옷을 벗도록 강요당했다. 그리고는 16명의 소녀와 함께 갇혔다. 돼지우리나 다름없었다. 먹을 것이라곤 콩과 소금만 나왔다. 다음날 경찰 의무관이 오더니 더 치욕적인 신체검사를 했다. 옷을 벗자 그들은 다시 우리를 조롱했다"라고 밝힌 한 여학생의 증언을 전했다.
헐은 투옥된 한국 여성들이 용변도 보지 못한 채로 갇혀있고, 140명이 한 욕조에서 구정물에 목욕해야 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 1만 명 대학살 기록…3시간 만에 1천 명 학살도
3·1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는 7천500여 명, 부상자는 1만6천여 명, 체포된 사람은 4만6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 언론에도 '대학살'(Massacre)이란 표현과 함께 일본 군대·경찰에 의해 살해된 한국인의 숫자를 전하는 당시 기사가 남아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상하이에서 온 전문을 토대로 3월 28일 서울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불과 3시간여 만에 1천 명이 넘는 한국인이 학살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이 한국에서 대학살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1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사망했고 5만여 명이 부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5만여 명이 체포됐으며, 그중 1천여 명이 여성이었다는 단락도 있다.
◇ 주간지엔 사진·만평…십자가에 묶이고, 낚싯대에 걸린 한국인
19세기에 창간됐다가 1930년대 폐간한 미국 주간지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The Litrerary Digest)는 1919년 5월 31일 자에 한국인들이 오로지 '등사판 인쇄물'(Mimeograph)이란 하나의 무기만 들고 저항에 나섰다가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등사판 인쇄물은 3·1 독립선언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는 중앙에 '1919년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s in 1919)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렸다.
십자가에 묶여 처형 직전인 한국인 3명을 일본 군인들이 지켜보는 장면이다.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한국인 희생자들이 양팔을 조악한 십자가에 묶인 채 무릎 꿇고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사진 설명을 달았다.
같은 주간지에는 '일본 판화'(A Japanese Print)라는 제목의 만평도 게재됐다.
'댈러스 뉴스' 특약으로 표기된 듯한 만평에는 전통 무사 복장에 왜나막신(게다)을 신은 일본인이 낚시 갈고리에 한국인을 걸어 둘러멘 채로 호수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등장한다.
더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일본의 잔인한 압제는 2천만 한국민의 분노만 더 격렬하게 만드는 동시에 극동을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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