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 나이에 파리 佛국립도서관 설계로 명성 떨치기 시작한 건축의 거장
파리올림픽선수촌, 시테섬 마스터플랜 등 동시다발 진행 '아이디어 공작소'
"한국 공공적 공간에 대한 인식변화 혁명적…광화문광장 재편은 용기있는 시도"
"눈 내린 이대 캠퍼스 아름답지 않나요"…평소 '소맥' 즐기는 친한파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65)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로 통한다.
2024 파리 올림픽 선수촌, 파리 시테섬 마스터플랜 등 모국의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추진하는 와중에 최근에는 광화문광장 국제 설계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해 서울의 미래를 고민하는 작업을 함께 했다.
지난 12일 저녁(현지시간) 기자가 찾은 파리 11구 '도미니크 페로 건축사무소'(DPA)는 조금은 허름한 인상의 좁은 골목 끝에 위치해 이곳이 세계를 주름잡는 건축가의 아이디어 산실이라는 사실이 언뜻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1층의 넓게 트인 전시실에 서자마자 진행 중인 다수의 프로젝트의 모형과 조감도, 설계 도면들이 보는 이들을 금새 압도했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로재 대표)과 오랜 기간 가깝게 교류하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친구' 사이이기도 한 페로는 승 위원장이 잠시 파리에 들렀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자신의 이름 머리글자를 딴 회사 DPA로 초청했다.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설계자로 선정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페로는 지금은 세계 건축을 이끄는 '거장'으로 꼽힌다.
BNF는 미테랑이 취임 후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의 한 축이었다.
센 강변 옆 톨비악 지구의 땅을 직사각형으로 깊이 파서 바닥에 광장을 만들고, 그 주위로 도서관을 통째로 집어넣은 뒤 지상에는 네 권의 책을 펼쳐놓은 듯한 모양의 건물을 세운 BNF 미테랑도서관은 건축사(史)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 속에 파리지앵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공간이 됐다.
이후 페로는 유럽연합(EU) 대법원 청사, 베를린올림픽 자전거 경기장과 수영경기장을 설계하고, 서울엔 캠퍼스를 지하공간에 묻으면서 중앙에 거대한 '보행 계곡'을 낸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로 이름을 떨쳤다.
기자가 승 위원장을 동행해 방문한 페로의 DPA는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건축·도시계획 사무소로 손꼽히는 곳으로, 십수개의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페로는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공모를 준비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늦은 시각까지 직접 꼼꼼히 점검하며 아이디어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우선 눈에 띈 대형 프로젝트는 2024 파리올림픽선수촌과 파리의 세계 최대 관광지구인 시테섬 개발 마스터플랜.
페로는 자신의 고국이자 근거지인 프랑스 파리의 초대형 프로젝트들의 모형과 이미지 상상도를 보여주면서 건축의 사회성과 공공성을 특히 강조했다.
"올림픽 선수촌에 대한 내 접근법은 아주 사회적인 것이에요. 올림픽 이후에도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사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기존에 있던 시설들과 새로 만드는 공간들을 함께 적절히 배치해서 공공적인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죠. 런던 올림픽 선수촌은 환상적이지만 부동산 프로젝트잖아요. 우린 달라요. 2024년 전에 이곳이 어떻게 바뀔지 한번 두고 보세요."
선수촌이 들어서는 파리 북부의 낙후된 생드니 지역을 올림픽이 끝나고 1년 안에 상업시설과 스타트업 기업들, 주거·근린시설들로 대체해 이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생각이다.
생드니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지난 2005년에 폭동과 소요사태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난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 중 하나인 파리 시테섬 마스터플랜 역시 공을 들이는 프로젝트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의 지하를 파서 새 공간을 창조해 건물과 건물 사이는 물론 센 강변까지 연결하고, 성당 옆으로는 대형 산책로인 '프롬나드'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서 깊은 도시 파리에서도 가장 역사성이 큰 시테섬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현대적으로 변모시킨다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시테섬은 좀 슬프죠. 파리의 가장 중심인데요. 지하 공간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창조해보려고 했습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때 선정된 프로젝트인데, 아직 정부의 최종 승인은 안 났어요. 기다려 봐야죠."
한국에서도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들을 한 그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냈다.
"눈 내린 ECC는 내가 참 좋아하는 풍경인데. 어때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화여대 캠퍼스복합단지(ECC)의 모형과 그 사계를 찍은 사진을 1층 전시실의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 페로는 "도시개발을 고민하는 정치인들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면 특히 ECC를 살펴보도록 한다"면서 ECC와 그 주변 환경의 시각적 강렬함은 정치인들에게 호소력이 크다고 했다.
한창 진행 중인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 사업도 현재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프로젝트.
강남의 영동대로 아래 5개 철도를 연결하는 통합역사와 버스환승정류장, 상업시설을 갖춘 지하 6층, 연면적 16만㎡ 규모의 광역복합환승센터를 조성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페로는 한국의 정림건축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 중인데, 태양광을 흡수해 반사하는 대형 라이트빔을 통해 자연광을 지하 깊은 곳까지 끌어와 쾌적한 지하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예산초과 문제로 설계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와중에도 그는 대규모 모형의 부품을 이리저리 맞춰보는 등 궁리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페로의 이름이 국내 언론에 최근 다시 등장한 것은 새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 공모의 심사위원 자격으로다. 그에게 광화문광장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공간의 '공공성'에 관한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공공적 공간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공공적인 공간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해졌어요. 저는 그게 혁명처럼 느껴져요. 정말 대단한 변화죠."
광화문광장 재편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도 했다.
"광화문은 매우 역사적·상징적인 공간이고, 광대하게 열려있기 때문에 재편이 쉽지는 않아요. 공모 당선작은 매우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효율적인 접근이 돋보였어요. 내 생각엔 매우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급진적인 것 같지는 않아요. 광화문광장 프로젝트는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면서 가야 할 거예요. 용기 있는 시도라고 봅니다."
끝으로 그에게 '한국인들이 당신의 건축을 왜 좋아하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페로는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한참 웃더니 "내가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 아닐까.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한국과 프랑스는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사람, 경관, 토양 등 유사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소맥'도 아주 맛있다"면서 껄껄 웃었다.
페로의 사무실에는 80명 남짓한 전체 직원 중에 인턴을 포함해 4명의 한국인이 근무 중이다. 이들은 주로 한국의 프로젝트들에 관여하고 있다.
한국,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프로젝트의 총괄은 리샤르 응우엔이라는 이름의 베트남계 프랑스인 소장 건축가가 맡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서울에 자주 가는데 한국의 꽁꽁 얼어붙는 추위가 엄청나더라"면서 "한국인들은 날씨처럼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표현이 직설적이라서 오히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 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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