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여행'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우리 국민은 부지런하지만 정직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린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준법정신이 부족하다. 그리고 감사할 줄 모른다."
올해 선종 10주기를 맞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두 달 전 마지막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남긴 말씀이다.
많은 외국 석학들도 한국인에 대해 김 추기경과 비슷한 평가를 한다. 법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정직하지 않은 데다 현상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마녀사냥'도 서슴지 않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은 한국인들이 왜 이처럼 도덕적·윤리적 수준과 지적 사고 면에서는 박한 평가를 받을까.
많은 전문가는 이를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서 찾는다. 기능적이고 단편적인 지식 습득 위주 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서구 선진국처럼 아이들에게 윤리와 도덕의 가치, 민주주의의 역사와 개인의 의무 등을 전혀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직 판사인 유영근은 이런 문제점을 깊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국민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두 딸을 데리고 서구 민주주의가 태동한 프랑스, 영국, 독일을 여행하며 이른바 '산 교육'을 시도한다. 적어도 자녀들만큼은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를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열흘이 넘는 여행에서 오간 두 딸과의 지적 교류와 대화를 책에 담아 펴냈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한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여행'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으로만 보였던 유럽의 주요 유적지에는 사실 흥건하게 피가 묻어 있다.
높이 솟은 성당과 화려한 궁전에는 수많은 민중의 희생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역사가 서려 있다. 광장과 거리에는 혁명의 함성, 살육과 배신, 마녀사냥의 슬프고 처절한 역사가 여전히 살아 숨쉰다.
아이들 역시 건전하고 아름다운 문화도 봐야 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냉철한 현실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법조계에 몸담고 있지만,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다소 무거운 사회과학 주제들을 자녀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베르사유 궁전, 바스티유 감옥, 콩코르드 광장과 개선문, 런던탑, 타워브리지, 버킹엄 궁전, 의사당과 빅벤, 브란덴브루크문과 전승기념탑,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베를린 장벽 등 유서 깊은 장소들에 얽힌 사연과 역사적 의미를 청소년들도 알기 쉽게 풀이한다.
저자는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쳐 현재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2016년 한국인의 억울함을 분석한 '우리는 왜 억울한가'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298쪽. 1만2천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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