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곰' 김진만 PD "인간이 불편 감수하면 곰과 공존 가능"

입력 2019-02-18 07:00  

다큐 '곰' 김진만 PD "인간이 불편 감수하면 곰과 공존 가능"
"예민하고 재빠른 지리산 반달곰이 제일 찍기 어려웠죠"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환경은 한번 망가지면 이전으로 못 돌아갈 수도 있거든요. 재활용 분리수거도 처음엔 불편하다고 말이 많았지만 결국 익숙해지면서 모범적인 나라가 됐죠.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공존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길 하고 싶었습니다."
김진만(48) MBC PD는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2009), '남극의 눈물'(2011) 등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는 작품들을 여럿 만들어왔다.
최근 2년에 걸쳐 제작한 5부작 다큐멘터리 '곰'을 선보인 김 PD는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계속 반복됐던 주제"라고 강조했다.
같은 주제의식을 꾸준히 변주하며 다큐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에 특별히 동물 곰을 선택한 데 대해 "특별히 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며 입을 열었다.

"영국의 다큐팀이랑 회의하다가 호기심이 생겨 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곰으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곰은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고, 원시종교가 곰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곰 신화가 지구 곳곳에 존재하니 곰을 통해 지구 환경을 보여주면 될 것 같았죠."
'곰'은 UHD 화질로 제작됐다. "'남극의 눈물' 때까지만 해도 테이프를 썼다"는 김 PD는 처음으로 UHD 다큐를 찍으면서 고충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테이프는 찍어두면 끝인데 UHD는 데이터 관리를 해줘야 한다"며 "또 요즘엔 카메라 3∼4대를 동시에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곰이 연어 사냥하는 장면이 있으면 그걸 정면에서, 하늘에서, 밑에서 동시에 찍어요. 요즘 시청자들은 그런 영상에 익숙하니까 그 눈높이에 맞추려면 촬영 분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죠. 나중엔 편집도 고통스러웠어요. 그래도 UHD를 통해 HD급에선 못 봤던 원시 자연의 색감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뿌듯합니다."

카메라엔 담았지만 방송으론 내보내지 못한 영상도 많다고 그는 말했다.
"동남아에서 반달곰이 웅담을 채취당하며 고통받는 문제는 사실 대안이 있지만 전 다큐가 해법을 제시할 순 없다고 봐서 문제 제기에 멈췄어요. 해외엔 곰을 위한 보호시설이 있는데 환경부와 시민단체에 계속 알릴 생각이에요. 또 지리산 곰들은 어쩔 수 없이 사연이 주는 감동의 세기, 부상의 정도를 따져서 경미한 녀석들은 방송에서 빠졌어요. 그런 애들한텐 미안하죠."(웃음)
2부 '곰의 몰락' 편에는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는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네네츠 유목민들의 삶을 긴 호흡으로 자세히 담아낸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곰 다큐'가 아니라 '네네츠족 다큐'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김 PD는 "곰과 밀접한 관계는 없어 보이지만, 네네츠족은 자신들끼리 자급자족하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곰'엔 판다, 불곰, 북극곰 등 세계의 온갖 곰들이 등장한다. 김 PD는 "지리산 반달곰 촬영이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북극은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요. 러시아 불곰은 연어 철에 호수에 가서 기다리면 되니까 만날 수 있고요. 하지만 반달곰은 숲에 살고 소리와 냄새에 예민해서 금방 도망가 버려요. 올무곰이 새끼를 낳은 걸 알고 나선 지리산에 잠복하며 2달간 못 내려왔어요. 올무곰 장면이 가장 찍기 어려웠고 해외 PD들한테서 연락 오는 것도 그 부분이에요."
김 PD는 '곰' 홍보를 위해 유튜버 대도서관이 진행하는 1인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후배들이 우리 채널보다 거기 나가는 게 더 좋다고 하는데 충격이었다"는 그는 플랫폼 격변의 시대에 방송 다큐멘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면서 방송에 내보내지 못한 올무곰의 다양한 모습을 짧은 클립 여러 개로 재가공하는 온라인판 '곰' 구상도 밝혔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두려워요.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전달만 했던 시대는 끝났어요. 이미 내셔널지오그래픽도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지상파가 아닌 온라인 다큐라면 새로운 문법으로 시작해야겠죠."
nor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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