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붙임성 좋게 변하고 싶어"
(상하이=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바둑의 전설로 회자하는 '상하이 대첩'의 주인공 이창호 9단은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하 농심배) 본선 3차전을 하루 앞둔 17일 중국 상하이 센트럴 호텔에서 이창호 9단을 만났다.
농심배에 선수가 아닌 참관인으로 초대받은 이창호는 "그냥 와서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연락을 받고 오게 됐다"며 7년 만에 농심배에 참여하는 소감을 밝혔다.
이창호는 2011∼2012년 제13회 농심배에 출전한 것을 마지막으로 이 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농심배 최고 영웅은 이창호다.
농심배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에서 5명씩의 프로기사가 출전, 연승전 방식으로 우승국을 가리는 바둑 국가대항전이다.
이창호의 농심배 통산 전적은 19승 3패로 승률이 0.864에 이른다.
특히 그는 2005년 2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6회 농심배 3차전 대국을 내리 이기며 기적같은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4년 11월 29일 2차전 마지막 대국 승리까지 합하면 홀로 5연승을 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의 왕밍완·장쉬, 중국의 뤄시허·왕레이·왕시 5단이 이창호의 상대였다.
당시 한국의 마지막 기사였던 이창호는 벼랑 끝에 몰린 한국에 짜릿한 우승을 안기는 신화를 썼다.
이 '상하이 대첩'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소재로 등장하며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전설이 됐다.
이창호는 14년 전 농심배 3차전 출전을 위해 상하이에 도착했던 그 날을 떠올리며 "그때 아마 국내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농심배에서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편하게 두가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30살이던 그때의 이창호는 갑작스러운 부진에 빠지며 연초부터 1승 5패라는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으로 슬럼프설을 몰고 다녔다.
그러나 농심배 우승을 계기로 일인자 입지를 다시 굳힐 수 있었다.
이창호는 이번 농심배에 한국 대표로는 홀로 출전한 박정환 9단도 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라고 믿음을 보냈다.
박정환은 이번 대회 한국의 마지막 주자다.
박정환도 지난 11월 2국 마지막 대국에서 중국의 판팅위 9단을 꺾으며 한국 우승의 희망을 살렸다. 이번 3차전에서는 일본·중국 기사 5명을 내리 이겨야 한국에 우승컵을 안길 수 있다. '상하이 대첩' 재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창호는 "우연히 상황이 비슷하게 됐다. 박 사범(박정환)도 힘을 내줘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 응원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박 사범이야 본인이 컨디션을 잘 조절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덕담했다.
이창호는 2005년 자신의 손으로 한국의 농심배 우승을 확정한 순간의 느낌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자세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이고, 국가대항전이라는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좋았다. 본의 아니게 부담을 가졌던 것 같은데,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돌부처'라고 불릴 정도로 늘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만의 비결도 있다.
이창호는 "편하게 두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며 "바둑 자체에 몰입하면 부담감은 자연히 잊을 수 있다. 집중과 몰입이 잘 되는 날은 이길 가능성이 커지고, 그렇게 안 되면 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돌부처 스타일 바둑으로 세계를 평정했지만, 이창호는 요즘 돌부처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2016년 11월부터 한국기원 이사로서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 것도 계기다.
이창호는 "한국기원에 행사 등 자리가 있을 때 이사로서 가끔 참석하는 정도"라면서도 "개인적인 문제인데, 붙임성이랄까 사회성이 많이 부족하다. 노력을 해보려고 생각하는데 쉽지 않다.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급기야 돌부처라는 별명에 대해서도 "좀 변하고 싶다. 좀 더 활발하고 사교적으로 되면 좋을 것 같다"며 "별명 자체에 문제는 없지만,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며 새로운 도전 과제를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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