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임정 百주년](34)사회주의 전력탓 유공자 탈락 김장환

입력 2019-02-25 06:00   수정 2019-02-25 08:45

[3ㆍ1운동.임정 百주년](34)사회주의 전력탓 유공자 탈락 김장환
제주 조천만세운동 주도…"유공자 선정 기준 개정으로 작은 희망"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지 보름만인 1919년 3월 16일.

김장환(1902∼?) 선생은 기미 독립선언서를 품고 일제 감시망을 피해 가까스로 제주도 조천읍 자택에 도착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유학 갔던 김장환 선생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
거국적인 민족운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그는 일경이 시위자 색출에 혈안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한제국의 남녘 끝 제주까지 3·1운동의 불씨를 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장환 선생은 제주에 도착 후 숙부인 김시범(1890∼1948) 선생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내보이며 당시 서울의 시위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들은 제주에서도 만세 시위를 이어가기로 결심하고, 뜻을 함께할 동지들을 규합했다.
목숨을 걸고 모인 사람들은 김시범, 김시은, 김장환, 고재륜, 김용찬, 김형배, 김연배, 황진식, 백응선, 박두규, 이문천, 김희수, 김경희, 김필원 등 14명이었다.
총 14명의 동지는 거사일을 3월 21일로 정했다.

이들은 몰래 대형 태극기와 소형 태극기를 제작했고, 계속해서 만세 시위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았다.
거사일인 21일 조천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높이 꽂아놓고 김시범 선생이 수백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어 김장환 선생의 선창으로 사람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제주에서의 3·1운동은 제주시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21일부터 24일까지 4차례에 걸쳐 전개됐다.
나흘간 이어진 만세 시위 속에 김시범·김장환 선생을 비롯해 시위주동자 모두가 일경에 체포됐다.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14명은 모두 기소돼 징역 6월에서 1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감옥 안에서 모진 고문으로 대부분 몸이 상했고, 일부는 출소 후 숨지기도 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14명의 주도자는 광복 이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1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김장환·김용찬 선생 등 2명만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갖고 제주로 들어와 3·1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조천만세운동의 핵심이었던 김장환 선생의 경우 사회주의 활동을 한 경력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지역 독립운동가에 대해 기록한 '제주 항일인사 실기'(김찬흡 편저)에 따르면 김장환 선생은 출옥 후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청년운동단체인 '경성부근 청년연합회기성회' 기성위원과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1934년 부인과 사별한 후 평양 태생의 여인과 재혼해 북한으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광복 후에도 남한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김장환 선생은 해방 후 북한에서의 활동이 명확하지 않아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경력자)로 분류돼 지금껏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정부가 그동안 포상에 소극적이었던 사회주의 활동자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포상할 수 있도록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을 개정하면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생겼다.
실제로 그의 숙부인 김시범 선생은 지난해 어렵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시범 선생 역시 광복 이후 발발한 제주 4·3 사건 당시 남로당에 입당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는데,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심사에서 탈락했으나 99년 만에 뒤늦게 오명을 털어내고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에도 후손들에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은 어렵게 찾아온 광복 후 겪어야 했던 분단의 아픔에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또 다른 비극이다.
b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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