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한국당 반대하면 패스트트랙"…야3당, '3월 패스트트랙' 카드 만지작
나경원 "의회민주주의 부정" 반발…민주-야3당, 선거제 개혁 각론에선 입장차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김연정 기자 =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이 선거제 개혁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절차) 추진에 공조하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내년 21대 총선을 1년1개월여 앞두고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선거제 개혁 논의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특히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을 고리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압박하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포위당한 한국당이 선거제 개혁 논의에 전향적으로 뛰어들지에 관심이 쏠린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지도부는 19일 조찬 회동에서 선거제 개혁 논의에 진전이 없으면 다음 달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방안에 원칙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단 오는 27일 전당대회에서 새로 뽑히는 한국당 지도부와 1∼2주일 선거제 개혁 협상을 한 뒤 별다른 성과가 없으면 패스트트랙으로 올리는 방안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무엇보다 평화당과 정의당이 적극적이다. 바른미래당은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하지 않으나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날 선거제 개혁의 패스트트랙 추진 방침을 시사하며 야 3당에 화답했다.
이해찬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면 법안 처리가 어려워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일정 기간(최대 330일)이 지나면 상임위원회를 거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이 서명하고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을 받아야 한다.
의석 분포를 보면 이날 현재 민주당(128명)·바른미래당(29명)·평화당(14명)·정의당(5명) 의원은 재적의원(298명)의 과반인 176명으로, 일단 패스트트랙을 위한 서명이 가능하다.
패스트트랙 문제가 어떤 상임위에서 다뤄질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선거제 개혁을 논의해온 정치개혁특위(재적위원 18명)에 오를 경우 여야 4당(12명)은 패스트트랙 의결 요건인 '5분의 3 이상'을 차지한다.
다만 선거제 개혁법안이 여야 4당의 공조 속 3월 중순에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고 최장 330일을 다 쓴다고 가정하면 총선을 불과 2달가량 앞둔 내년 2월에나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이 경우 선거제 개혁과 연동된 선거구 획정 문제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4조 2는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법에는 선거구 획정 시한을 어긴다고 제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예비후보 등록 문제도 있어 연말까지는 획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다고 해도 선거제 개혁의 각론을 놓고 민주당과 야 3당의 입장차가 있어 협의 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야 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득표율에 정비례하는 의석배분 선거제도)를 핵심으로 한 선거제 개혁 관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의원정수의 경우 국회 정개특위 자문위원회가 권고한 360석을 존중하되 여야가 작년 말 합의한 대로 현행보다 30석 늘어난 330석을 기준으로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현 의원정수 300석 유지(소선거구제로 지역구 200명,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100명 선출)하되 100% 연동형이 아닌 부분 연동형(또는 확대 병립형)을 협상안으로 내놨다.
민주당이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과 사법개혁 법안 등을 선거법 개혁법안과 패키지로 묶어 처리하려는 입장을 보인 것도 협상 과정에서 변수로 꼽힌다.
이해찬 대표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선거법 개정을 포함해 개혁 입법을 패키지로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자고 제안한 것을 언급하며 "모든 것을 안 할 수 없는 일이라 민주당과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이 공조해 처리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해 동의했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혁을 둘러싼 민주당과 야 3당 간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패스트트랙 공조 움직임이 있는 만큼 한국당도 대응책 마련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태우겠다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저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조치를 최대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에 태운다면 의원직 총사퇴를 하고 전면전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여야 4당의 공조 체제 구축이 그동안 선거제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한국당을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포석이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동안 제1야당을 논의의 장에서 완전히 빼놓고 선거제를 개정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패스트트랙 카드가 '한국당 압박용'이라는 것이다.
총선을 불과 몇 개월 남기지 않은 시점에 패스트트랙을 통해 선거제 개혁법안이 통과된다면 선거를 준비하는 당이나 후보들의 혼란도 불가피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 4당 공조는 실제로 패스트트랙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보다 선거제 개혁 당론도 내놓지 않는 한국당의 태도를 바꿔보겠다는 데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ong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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