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 바친 민주화운동' 김윤 선생 5·18구묘역 안장

입력 2019-02-19 18:17  

'일생 바친 민주화운동' 김윤 선생 5·18구묘역 안장


(광주·전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한평생을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여성 농민운동가 고(故) 김윤 선생이 20일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역)에 안장된다.
광주전남추모연대는 "김윤 선생은 5·18 유공자 대상이지만 심사 과정에서 돌아가셨다"며 "5·18 유공자가 되진 못해 국립묘지에 묻히진 못하지만 고인을 위해 구묘역에 안장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19일 5·18 구묘역 안장 TF팀은 김윤 선생의 5·18 공적을 기려 구묘역 안장을 승인했다.
당시 TF팀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존 인물인 고(故) 김사복 씨의 유해를 안장하는 안건도 함께 승인했다.
김 선생은 1953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71년 서강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서강대 영자신문사 편집장을 지냈던 그는 1974년 서강대 식당에서 열린 '유신헌법 및 대통령 긴급조치 철폐를 위한 결의문을 낭독하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구속된 사람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다.
군사법원에 넘겨진 김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해 6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김 선생은 곧장 이른바 지하신문(자유서강)을 3호까지 발행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1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80년 학교에 복학했지만, 또다시 5·18 광주민주화운동 배후 조종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고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도피 생활 중에는 '국민에게 드리는 글' 등 유인물을 제작해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81년 전북 순창에서 농사를 시작한 김 선생은 여성 농민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97년 지병이 악화해 뇌경색을 일으킨 후 투병 생활을 하다 2004년 숨을 거뒀다.
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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