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셰저칭의 '지폐의 세계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책 소개에 앞서 우리나라 지폐의 도안부터 살펴보자.
먼저 천원권은 퇴계 이황과 성균관 명륜당, 매화가 앞면을 장식한 가운데 뒷면에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그려져 있다. 오천원권 앞면에는 율곡 이이와 오죽헌이, 뒷면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보인다.
만원권에서는 세종대왕이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근엄하게 전면을 바라본다. 뒷면에는 혼천시계, 천문대 망원경 같은 도안이 보인다. 오만원권은 신사임당의 초상화, '묵포도도' 등을 앞면에 두고 설곡 어몽룡의 '월매도'와 탄은 이정의 '풍죽도'가 그 이면을 장식한다. 이들 도안이 담고 있는 의미는 과연 뭘까?
대만 인문학자이자 미학자인 셰저칭이 쓴 책 '지폐의 세계사'는 세계 각국의 지폐로 그 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풀어냈다. 지폐 디자인에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이상이 담겨 해당 국가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돼준다.
저자는 유년 시절에 빛바랜 외국 지폐를 우연히 손에 넣은 것을 계기로 다양한 지폐와 그 역사,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25년 동안 97개국을 여행하며 각국 지폐를 수집했다. 이들 지폐에는 국가 정체성이라는 거시적 의미는 물론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 사건과 비밀을 디자인의 배후에 숨겨놓고 있었다.
지폐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예술이자 시대의 기억이다. 이 책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42개국 지폐로 각국 문화와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 도안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고 국정 방향을 함축한다. 때로는 통치자의 권력강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지폐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도구라고 말한다. 국민은 지폐를 날마다 접하며 자국에 대한 긍지를 높이고, 외국인들은 이색적 지폐 디자인을 보며 해당 국가의 이모저모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런 점에서 지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의 하나다.
이 책은 저자의 생생한 여행담과 더불어 430장에 달하는 지폐 사진과 현지 사진들로 그 이해를 돕는다. 한국 독자로서 아쉬운 점은 책이 다룬 42개국 지폐 중에 한국 지폐가 없다는 것. 북한의 지폐는 독재에 초점을 맞춰 이라크, 리비아 화폐와 함께 다룬다.
마음서재 펴냄. 김경숙 옮김. 32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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