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속 3·1 운동] ⑬ 중남미 언론 "코레아, 해방 원한다"…日 대량학살 고발(끝)

입력 2019-02-24 10:00  

[외신속 3·1 운동] ⑬ 중남미 언론 "코레아, 해방 원한다"…日 대량학살 고발(끝)
멕시코 엘 푸에블로, 2개월여간 24건 집중 소개…독립 선언문 전문 게재 주목
브라질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 14건 객관 보도…짧지만 강렬하게 독립투쟁사 전해




※ 편집자주 = "조선 독립 만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반도 전역을 울렸던 이 함성은 '세계'를 향한 우리 민족의 하나 된 외침이었습니다. 한민족이 앞장서 '행동'함으로써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아시아·아프리카 식민지의 각 민족을 자각시켜 함께 전 세계적 독립운동을 끌어가자는 외교적 호소였습니다. 강대국의 이권 다툼이 판치던 당시 국제질서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자격을 얻었던 일본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고만장하던 일본이 두려워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외신 보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3.1운동 초기 보도통제와 '프레임 조작'으로 관련 보도를 막는 데 그야말로 전력투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이지, 진실을 감출 순 없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중국 상하이(上海)로부터 시작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D.C.에 이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모스크바, 브라질 상파울루, 싱가포르로 3·1운동 소식은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길지 않은 기사도 많았지만 이에 자극받은 각 식민지 국가에서는 앞다퉈 독립선언문이 나오면서 민족적 독립운동이 촉발됐습니다. 비록 한민족이 '자립'(自立)에는 실패했지만, 외신의 창(窓)을 통해 민족 자결과 독립에 대한 세계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 포진한 특파원망을 총동원해 당시 외신 보도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지금까지 3·1운동을 보도한 외신 일부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세계 주요국 별로 보도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발굴해 소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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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속 3·1 운동] ⑫ '식민굴레' 동남아 언론의 동병상련…"계층넘어 韓人 단결" [http://www.yna.co.kr/view/AKR20190213120400104?input=1195m]


(멕시코시티·상파울루=연합뉴스) 국기헌 김재순 특파원 =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Corea Quiere Emanciparse del Japon)'
'조선 독립 만세' 외침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던 1919년 3월 14일.
태평양 너머 중미 멕시코의 한 수도권 일간지에 현지인들에게 낯설 법한 '한국(Corea)'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멕시코 일간 '엘 푸에블로'(EL PUEBLO)는 이날자 지면 1면 오른쪽 상단에 이 같은 제목으로 3.1 운동의 열망을 전했다.
신문은 AP통신 베이징 발로 "한국의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평화적 시위를 통해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의사를 밝히려고 선언문을 작성,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일본 당국은 1천명을 체포했다"며 3.1 운동 소식을 처음으로 전달했다.
일본의 집요한 방해에도 조선 독립을 염원하는 3.1 운동의 만세 합창이 울려 퍼진 지 13일 만에 멕시코에도 생생한 소식이 전파된 셈이다.

엘 푸에블로는 14일 첫 기사를 시작으로 5월 13일까지 무려 24건의 한국의 독립운동 관련 보도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14일 첫 보도에 이어 15일 '한국의 세계 최대 자유 운동'(국제면), 16일 '기독교인들이 앞장선 한국의 자유 운동'(국제면), 17일 '한국서 확산하는 혁명'(국제면), 18일 '전 왕의 죽음에 무슨 일이' 등의 제목 아래 한국의 독립운동 움직임을 연속해서 다뤘다.
신문은 대부분 AP통신 등 외국 언론을 인용, 국제면을 통해 사실 위주로 소식을 전달했지만, 자신들의 시각으로 한국의 독립 문제를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4월 21일자 국제면은 "2천만 한국 국민의 영혼은 굴욕의 희생물이다. 최근 뉴스는 현재 한국 상황이 분통 터지며 견딜 수 없는 상황임을 알려준다"며 일제 치하의 엄혹한 현실을 고발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없으며 모든 움직임은 일본 제국이 통제한다"며 "한국 아이들이 자국 책을 읽거나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정복자(일본)는 어떤 애국적 시위도 금지한다"면서 "일본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국이 행복하다고 믿게 만들 책임이 있지만 이 반란 운동(독립운동)은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4월 21일자 지면에서 4면과 10면에 걸쳐 우리 민족의 열망이 담긴 기미 독립 선언문 전문을 싣기도 했다.
엘 푸에블로의 집중 보도는 일본이 한국의 국권을 강탈할 당시 멕시코가 국제무대에서 중립·보편적 외교 노선을 취하는 가운데 나왔다.
당시에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유럽과 미국 열강의 침략과 이권 침탈로 인해 영토의 절반가량을 상실하고 국부를 수탈당한 경험이 있어 중립적이며 보편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하던 상황이었다.
엘 푸에블로의 관심은 멕시코가 1910년에 시작된 혁명이 한창이던 1915년에 불개입 주의 원칙에 입각한 '카란사 독트린'을 천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한국과 외교적 교류가 없었던 멕시코는 1888년 일본과 '우호통상항해조약'을 통해 첫 외교 관계를 체결했다.
이 조약은 당시에 흔치 않았던 상호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조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엘 푸에블로의 보도는 1905년 노동 이민으로 형성된 한인사회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기폭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동부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 한인사회는 1909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를 창립한 후 사관을 양성하는 기관인 숭무학교를 세웠고, 진성학교와 해동학교도 설립해 민족교육을 했다.
도산 안창호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독립자금을 송금했고, 광복 후인 1946년에는 국가재건의연금을 보내기도 했다.

엘 푸에블로는 1914년 10월 창간한 뒤 1919년 5월에 폐간했지만 당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일간지로 알려져 있다.
사설에서 혁명·정치·사회적 이상을 구체화하고 민중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표방할 정도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했다.
창간 초기 멕시코 서부 베라크루스 주를 거점으로 삼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 멕시코시티로 본사를 옮겼고, 수도와 인근 도시에 신문을 배포했다.

100년 전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 브라질 언론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통신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탓에 한국의 독립운동을 실시간으로 전하지는 못했지만, 미국과 유럽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당시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했다.
브라질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신문 가운데 한국 독립운동 관련 내용이 실린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것은 1875년에 창간된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Estado de Sao Paulo)가 사실상 유일하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 이 신문에 실린 한국 관련 기사는 30여건이며, 이 가운데 독립운동을 다룬 것은 14건 정도다.
대부분 짧지만 강렬한 문장으로 한국인의 독립투쟁사를 전했다.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그 시절의 관행에 따라 코레아(Corea)로 표기한 점도 눈에 띈다.
신문은 3월 20일 자에서 미국 워싱턴발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 주재 각국 외교관들에게 독립선언문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다음 날에는 영국 런던발로 "어떤 이유로도 한국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으며 한국인과 일본인의 화합과 평화를 촉구한다"는 일본 총독의 발언을 전했다.
일본에서 한국 독립운동 관련 보도가 금지됐다는 도쿄발 내용도 같은 날 신문에 실렸다.

4월에는 한국 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2일에는 "일본의 잔인함을 피해 한국인들이 만주로 도피했다"고 보도했고, 15일엔 미국 뉴욕발로 "한국에서 미국인 선교사 4명이 구속됐다"는 내용을 전했다.
한 기독교인의 제보를 바탕으로 한국인 대량학살을 상세하게 고발한 내용도 있었다.
15일 자를 보면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3월 28일 서울에서 약 3시간 동안 열린 시위에서 1천명 넘는 비무장 시민들이 숨졌다. 일본인들은 한반도 전역에서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으며 3월 27일 이후 수천 명이 사망했다. 일본인들은 시위 주동자들의 집을 부수고 주동자들의 부인을 끌어내 대중 앞에서 옷을 벗기고 매질을 했다. 감옥에 갇힌 시위자들은 고문을 당했고 의사들의 치료가 금지됐다"고 나와 있다.
17일 자에서는 뉴욕발로 미국 필라델피아 모인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윌슨 대통령과 연합국에 한국 임시정부 인정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18일과 25일엔 한국에서 일어난 독립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파견했다는 내용과 함께 주미 일본 대사관이 일본의 진압을 과장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에 항의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후에도 신문은 "한국 대표단, 파리 평화회의에서 독립을 호소"(5월 13일), "일본 총독 암살 시도"(9월 9일·13일), "일본 강점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을 숨겨준 미국인 선교사에게 1개월 징역형 선고"(12월 9일), "일본 총독,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자극한다고 언급"(12월 13일) 등의 기사를 통해 독립운동 전개 과정을 소개했다.

브라질 언론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진 데는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중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독립의 기운은 숱한 좌절을 거쳤으나 유럽대륙에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거부한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로 옮겨오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나서 왕실은 1821년 포르투갈로 돌아갔으나 브라질에 남은 동 페드루 왕자가 1822년 9월 7일 독립을 선언하면서 식민지 굴레를 벗어났다.
당시 브라질-일본 관계를 고려하면 브라질 언론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사실 위주로 보도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질은 1895년에 일본과 수교했다. 일본인의 브라질 이민은 1908년부터 시작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브라질 언론이 한국의 독립운동 상황을 보도한 것은 나름대로 객관성과 중립성에 충실한 자세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penpia21@yna.co.kr
fidelis21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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