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자녀 같은 학교 안돼"…내신평가 불신에 상피제 급물살

입력 2019-02-21 07:00  

"교사·자녀 같은 학교 안돼"…내신평가 불신에 상피제 급물살
울산·부산 이어 서울·경기·대구·광주 등 도입 확산
학교 수 적은 농어촌·섬·사립 적용 고민
대학 입시제도·학교 시스템 근본 변화 모색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교직원에 의한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사건이 잇따르면서 내신성적 평가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교사 부모와 자녀가 같은 중·고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는 일선 교육청이 빠르게 늘고 있다.
울산·부산 등 기존에 이 제도를 시행했던 지역은 물론 서울·경기·대구·광주 등 대도시 교육청을 중심으로 당장 올해 3월 새 학기부터 자녀가 재학 중인 공립 중·고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을 다른 학교로 보내고 있다.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숙명여고 시험문제·정답 유출사건'이 발생한 서울시교육청은 자녀와 같은 학교에 재직 중인 공립 중·고교 교사들에게 전보 신청을 내도록 요청해 다음달 1일자 정기인사에 반영한 상태다.
교사 인사권한이 학교법인에 있는 사립 학교는 상피제를 강제할 수 없어 같은 학교법인 내 다른 학교로 옮기거나 최소한 자녀가 속한 학년은 담당하지 않도록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교육감 선발 후기고 신입생 배정 때도 교직원 자녀 96명을 부모가 재직하는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 배정했다.
경기도교육청도 올해부터 공립 중·고교 교사 발령 시 상피제를 의무적으로 적용한다.
지난해까지 '권고사항'이었던 탓에 자녀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교사들은 다음달 1일자 인사에서 모두 전보 대상이 된다.
사립 학교에는 '자녀가 재학 또는 입학 예정인 학교에 근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인사업무지침을 전달해 협조를 구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기도에서 자녀와 같은 학교에 있는 사립 중·고교 교사는 166명이었다.
대구·광주시교육청도 다음달 1일자 인사에 이 같은 상피제를 적용했다.



대도시 교육청들이 발 빠르게 제도 시행에 나선 것과 달리 농어촌이나 섬 지역을 담당하는 교육청들은 지역 특성상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남·경북·충북·인천·강원교육청 등은 올해 과도기를 거쳐 내년부터 상피제를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문계 학교가 한 곳밖에 없는 농어촌 지역의 경우 교사 부모나 학생 중 한쪽이 다른 시·군으로 옮겨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대도시는 상피제를 시행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농어촌이 많은 지역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그러나 전반적인 여론이 상피제 도입으로 기울어진 탓에 내년에는 적용 범위에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지역에 도입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경남에서 자녀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교사는 95명이었다.
제주도교육청 역시 상피제 전면 시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최근 교육부에 전달했다.
제주도의 경우 서귀포 지역에 인문계 고교가 2곳 밖에 없는데 이 중 한 곳이 사립이어서 교사 전보가 안 되는 상황이다.
또 교사가 섬 학교로 발령이 나는 경우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아 상피제 전면 시행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같은 학교에 있는 경우에도 자녀의 성적 평가·관리에서 교사 부모를 배제하고 교사 전보 요청 시 자녀가 어느 학교에 있는지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할 방침이다.
전북도교육청은 상피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도입을 전면 보류했다.
상피제가 교사를 '잠재적 범인'으로 몰아 교원의 자존감 훼손은 물론 학생의 학교 선택권과 교사의 직장 선택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교원단체들도 상피제 시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형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 정책실장은 "상피제는 교사와 학생의 선택권이 침해당할 수 있는 문제이고 지역 특수성과 교사마다 입장이 달라 통일된 의견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피제 확산의 배경이 된 대학 입시제도와 학교 시스템 등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민애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경기지부장은 "상피제가 지금 당장 몇몇 학교에서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대안이 되겠지만 대입 위주로 운영되는 학교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부장은 "대입과 내신 위주의 학교가 아니라면 교사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있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학교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내신 조작이 아닌 다른 형태의 문제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채두 양지웅 김호천 손상원 정찬욱 이영주 이재영 한무선 조정호 김선경 허광무 변우열 신민재 기자)
sm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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