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서 공부하다 농수로에 떨어지기도"…70세 농부 박사학위

입력 2019-02-20 16:46   수정 2019-02-20 17:21

"트랙터서 공부하다 농수로에 떨어지기도"…70세 농부 박사학위
가난·고령 극복 만학도 "못 배운 게 한"…모교 전주대에 1천만원 기탁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빈농의 자식이었다. 공부를 꽤 잘했으나 집안 형편은 녹록지 않았다.
16살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가장의 무거움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고향인 전북 김제에서 논 한 뙈기 없는 집에서 흙짐을 지고 살았다.
때론 친구 집에서 머슴살이했다.
자존심은 사치였다. 북받치는 서러움에 매일같이 이불 속에서 눈물을 삼켰다.


배움의 열망은 높았지만, 가장의 무게를 감당해내느라 학업을 이을 겨를이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군대였다.
1971년 입대해 이듬해 12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영화로 제작됐을 정도로 치열했던 베트남 앙케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다.
1년 2개월간 베트남에서 번 20만원은 삶의 밀알이 됐다.
고향에 돌아와 논 600평으로 농사를 지으며 땅을 불렸다.
뒤돌아볼 틈이 없는 삶이었다. 이젠 4만여평을 관리하는 부농이 됐다.
하지만 배움의 꿈을 한처럼 지니고 살았다.
2남 1녀의 자녀가 장성하자 가슴 속 깊이 넣어둔 배움의 꿈을 다시 펼쳐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들에게 어떻게 검정고시를 보느냐고 물었다. 아들이지만 창피한 노릇이었다.
아들의 도움으로 2008년 중등 검정고시를 봤다.
수십 년 만에 돋보기를 끼고 공부하다 보니 어지럼증으로 두 차례 쓰러지기도 했다.
어렵사리 찾은 배움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병석에서 일어나 2009년 고등 검정고시를 마친 데 이어 2010년 꿈에 그리던 전주대학교 부동산학과 새내기가 됐다.
땅과 함께 살아온 인생이기에 부동산학과를 택했다.
주경야독은 쉽지 않았다.
중간고사 기간은 모내기 시기와 겹쳤고, 기말고사 기간은 추수 시기와 맞물렸다.
시간이 없다 보니 트랙터에서 공부하다가 농수로에 빠지기도 했다.
기름때가 안 묻도록 집안용과 트랙터용 책 두 권으로 공부했다.
이렇게 어렵사리 학사 학위를 받았고 내친김에 같은 학과에서 석·박사를 모두 마쳤다.
대학 입학 9년 만에 박사모를 쓰게 됐다.
20일 전주대 부동산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송명수(70)씨의 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다.
송씨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며 "배움에는 늦음이 없고 무언가를 배우는 행복감은 정말로 크다"고 말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장학금 1천만원을 모교인 전주대에 기탁했다. 자신과 같이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마음에 걸렸고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서다.
장학금 기탁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다짐한 목표였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6차 산업형 관광농원 활성화 요인에 관한 연구'.
그는 이 논문 제목대로 주변 농민들에게 원예사업 이론을 전파할 계획이다.
sollens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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