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응용예술 박사 따자마자 3월 법무대학원 진학
"장애인택시 5시간 기다리다 지하철 승차…승강장 틈새 넓어 종점까지 못내려"
"법 공부해 장애인권리 개선"…록밴드 '더 크로스' 활동 중 불의사고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제가 가진 이 작은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계속 크고 작은 문턱, 계단과 마주치겠죠. 하지만 하나하나 이겨내고 끝없이 도전해나갈 겁니다."
2000년대 초 가요계를 풍미한 록밴드 '더 크로스' 보컬 김혁건 씨는 21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전날 열린 경희대 졸업식에서 응용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신마비 때문에 어깨 아래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김씨가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지 약 4년 만에 거둔 값진 성과였다.
2012년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불법 유턴 차와 부딪혀 경추 손상에 의한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김씨는 2년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고 직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중예술전공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그는 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김씨는 "재활치료를 막 끝낼 때만 해도 '학교를 다시 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니기도 어려울뿐더러,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렇지만 졸업 학기만 다니면 끝나는 상황에서 공부를 놓아 버리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가족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 '일단은 해 보자' 하는 심정으로 재입학했다.
다시 돌아온 학교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당장 전자책으로 나온 전공 서적이 거의 없어 책을 일일이 스캔해 컴퓨터로 봐야 했다. 시험을 보거나 수업을 들을 때도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어 학습도우미가 필기를 대신했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을까. 김씨는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것들도 계속 포기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일반 학생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두 배, 세 배 이상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석사 과정을 마친 김씨는 학위뿐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2017년 같은 대학 응용예술학과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더 깊게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제가 몸이 불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논문을 쓰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 보니, 입학과 동시에 졸업논문 주제를 음악치료로 잡았죠."
박사과정 도중 김씨가 펴낸 논문 '하모니카를 활용한 호흡재활 훈련이 척수 손상 환자의 호흡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인 '인간행동과 음악연구'에 실렸다.
논문을 쓰면서 임상연구를 위해 따로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화여대에 있는 음악치료 관련 학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전문가들에게 자문했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딴 그는 또다른 출발을 준비 중이다. 3월 경희대 법무대학원에 다시 진학한다. 장애를 얻기 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상 속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을 공부하고 싶어서다.
김씨는 "도로 턱 때문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도 멀리 돌아서 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장애인 콜택시가 5시간을 기다려도 안 와서 지하철을 탄 적이 있는데,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너무 넓어 내릴 수가 없어 종점까지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원에서 법을 공부해 장애인이 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고 때문에 그만뒀던 음악 활동도 몇 년 전부터 활발히 하고 있다.
2014년 10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재활 후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2015년 솔로 앨범 '넌 할 수 있어'를 발매했다.
김씨는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에서도 다른 장애인 가수들과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최근에는 록밴드 'GIRL'과 협업(컬래버레이션) 앨범, 더크로스 싱글 앨범 작업이 한창이다.
언론을 통해 기적적인 재활 이야기가 알려진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김씨에게 이따금 불의의 사고로 몸이 마비된 사람이나 그런 이들의 가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계속 쪽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이겨냈느냐' 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장애 때문에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김씨는 "그런 힘든 시간을 나도 겪었지만, 견뎌내야 한다"며 "그렇게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안에서 웃음도 되찾을 수 있고, 행복한 시간도 온다.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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