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대주교 "북미관계 급진전 시 교황 방북에도 긍정 신호"

입력 2019-02-24 07:00  

김희중 대주교 "북미관계 급진전 시 교황 방북에도 긍정 신호"
교황청 회의차 로마 방문…"교황 방북, 한반도 평화에 큰 힘 될 것"
"북미회담 열리는 베트남, 종교적 측면서도 북한에 '모델' 역할"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내주 베트남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미 간 화해가 급진전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에도 긍정적 신호로 작용할 것입니다"
교황청에서 24일 폐막한 '가톨릭교회 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회의'에 한국 천주교회를 대표해 참석한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광주대교구 교구장·대주교)이 회의 기간 연합뉴스와 만나 교황의 방북 가능성을 비롯한 가톨릭계의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교황청을 찾은 김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작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때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 등 교황청 관계자도 한반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이번 북미회담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해 들은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김 대주교는 이에 대한 견해도 내비쳤다.
그는 "교황은 북한에서 공식 초청장이 오면 북한에 갈 수 있다고 했다"며 "이런저런 해석을 붙이지 말고 이 말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건이 무르익어 북한이 교황에게 공식 초청장을 보내면 교황은 그때부터 방북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본다. 교황의 의지만 있으면 올해 내로 북한을 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대주교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면 한반도의 평화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콜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막후 역할을 하는 등 국제적 갈등 해소와 화해 진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했다"며 교황 방북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산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에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남북 관계가 여전히 경색됐던 2017년 5월 하순, 당시 갓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특사로 교황을 만나 남북 화해의 중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아울러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리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도 북한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게 김 대주교의 생각이다.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대내외에 천명한 북한에 '도이머이'라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은 경제 성장을 위해 따라야 할 최적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교황청은 공산화 이후 수십 년간 가톨릭교회와 갈등을 빚은 베트남과 교황 베네딕토 16세 재위 시절인 2010년 교황청의 베트남 대표 임명에 합의하면서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뒤 현재까지 지속해서 관계를 진전시켰다.
김 대주교는 "김정은 위원장이 개혁·개방의 모델로서뿐 아니라 교황청과 관계라는 외교적 측면에서도 베트남 모델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사제도 없고 가톨릭 신자도 없는데 교황의 사목 방문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몇 명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북한에 상당수의 신자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예수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의 양을 남겨놓고 길을 떠난 것처럼 소수의 신자라도 격려하고 신앙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교황이 북한에 갈 수 있으리라 본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평양의 장충성당에 교황 바오로 2세에게 선물 받은 '성작'(미사 제구의 하나로, 포도주를 담는 잔)을 소중히 간직하고 세례 대장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일요일마다 신자가 모여 공소예절(가톨릭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에서 성찬의 전례를 빼고 하는 미사 형식)을 진행하는 등 가톨릭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내 7대 종단 연합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회장인 김 대주교는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종교계를 대표해 동행했고 지난 12∼13일에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에도 참석하는 등 북한과 교류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인사로 꼽힌다.
김 대주교는 "작년에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났을 때 공식 만찬 도중 결례를 무릅쓰고 청한 사진 촬영에 흔쾌히 응하는 등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소탈한 측면이 있더라"며 "청소년기를 스위스에서 보내 서구식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김 위원장이 종교에 대해서도 선대보다 열렸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로마에 있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학자이기도 한 김 대주교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라고 평가하면서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시기에 남북이 서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교류와 협력으로 스스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민족은 역사 이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이라는 철학을 실천했다"며 "이번 기회를 살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이를 통해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역사가 반드시 이뤄지길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응원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학생 시절 베트남 전쟁에 통역병으로 참전했다는 그는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전쟁이 나면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며 "일각에서 북한과 화해, 교류에 들어가는 비용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는데 자칫 전쟁이 나면 인명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복구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동아시아 지역 대표 겸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최근 임명된 그는 "올해는 동아시아 가톨릭에서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며 동아시아 가톨릭계의 의견을 수렴해 가톨릭이 역내 평화와 인류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교황청은 중국과 작년 9월 주교 임명에 관한 오랜 협상을 타결해 관계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했고 올해 11월엔 교황이 일본을 방문한다.
김 대주교는 "1984년에 요한바오로 2세가 광주에 방문했을 때 광주가톨릭대 신학생들을 만나 '앞으로 여러분이 중국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했던 게 귀에 선하다"며 교황청과 막 관계 정상화의 길로 접어든 중국 가톨릭과 한국 천주교가 교류하는 방법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 방문 때 원자폭탄 피폭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본이 2차 대전의 가해자라는 사실은 감춘 채 피해자의 측면만 부각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그는 "독일은 2차 대전에서 주변국에 끼친 피해를 용서해 달라며 총리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일본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며 "일본이 교황 방문 때 원폭 피해만 이야기하지 말고 그런 피해를 본 원인과 배경을 철저히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고 답했다.
서방 곳곳에서 가톨릭교회를 좀먹는 성직자에 의한 미성년 성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황청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김 대주교에게 나흘 동안 이어진 이번 회의가 한국 천주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질문했다.
그는 "한국 천주교는 서구와 문화가 달라서인지 아직 주교회의에 미성년자 성폭력 문제가 고발된 적이 없다"면서도 "한국교회 역시 사제가 연루된 성 추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이번 회의를 계기로 이 문제에 더욱 경각심을 갖고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하면서 교회 내 약자를 보호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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