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수녀, 아동 성학대 관련 200명 앞 이례적 비판
"이번 폭풍우는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교황 대응에는 긍정적 평가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출신의 한 수녀가 가톨릭교회에 만연한 아동 성 학대 행위와 이를 방치한 '침묵의 문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이 수녀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고위성직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바티칸에서 열린 아동 성 학대 범죄 대책회의에서 거침없이 비판을 쏟아내 주목을 받았다.
이번 회의에 초대받은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하나인 베로니카 오페니보 수녀는 23일(현지시간) 연설 단상에 올라 교회 내 성범죄를 목격하고도 눈을 감은 고위성직자들 전부를 작심 비판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로이터와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위계질서가 비교적 엄격한 가톨릭 교구 사회에서 수녀가 고위성직자들을 면전에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오페니보 수녀는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잔혹 행위에 어떻게 그렇게 오래 침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고 되물으며 "우리는 위선과 현실 안주가 이러한 수치스럽고 가증스러운 일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나이지리아 '성자예수회' 소속인 그는 2002년 미국 성직자들의 성 추문 의혹을 세상 밖으로 드러낸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언급하며 가톨릭 내 '침묵의 카르텔'을 비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고위성직자들을 향해서도 "가난과 분쟁이 더 심각한 문제라며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정당화하는 행태를 더는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폭풍우는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페니보 수녀는 다만, 이번 회의를 소집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는 성 추문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등 '정직하게' 대응한 점을 높이 샀다.
교황이 시간을 두고 제대로 사태를 파악하고자 애썼으며 이후 겸손한 태도로 용서를 구하고 문제를 바로잡고자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를 전문적으로 취재한 원로 언론인도 회의에 나와 성직자들을 겨냥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멕시코 방송사 기자인 발렌티나 알라즈라키(64)는 스페인어로 "사제 성 학대의 희생양이 되는 비극을 경험한 소년·소녀들도 주교·추기경들만큼 존중받아야 할 인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는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말라. 당신들이 어린이들과 엄마, 가족, 시민 사회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우리 같은 언론인들은 당신들의 최악의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독일 가톨릭을 대표하는 진보적 인사인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은 이날 "아동 성 학대 범죄를 저지른 성직자의 이름을 기록한 자료가 파손됐거나 애초에 그런 서류가 작성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 발언은 피해자 단체들이 범죄를 저지른 모든 성직자의 이름과 행위, 교황청의 조사 결과 등을 담은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가운데 나왔다.
이번 회의는 미국·칠레·호주 등 서구 사회 곳곳에서 과거 사제들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저지른 성 학대 사례가 속속 드러나며 가톨릭교회의 신뢰성이 뿌리부터 흔들리자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자 21일 개막했다.
회의에는 세계 114개국의 가톨릭 최고 의결 기구인 주교회의 의장들과 가톨릭 수도회 대표 등 고위성직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회의는 24일 폐막 미사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폐막 연설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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