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노동자들 사이에 '죽음의 공장'이라 불린다. 이 제철소에서 2007년 이후 12년 동안 안전사고로 무려 36명이 숨졌다. 해마다 3명꼴로 안전사고 사망자가 발생하다 보니 붙여진 오명이다. 이런 열악한 사업장이 산업재해가 적다는 이유로 산업재해보험료를 감면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당진제철소는 2014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105억4천여만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사업장별로 최근 3년 동안 산재 발생 정도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 또는 할증하는 '개별실적요율제' 탓이다.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통해 사업주의 산재 예방 노력을 유인하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그러나 개별실적요율제는 단일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원청과 하청으로 산재보험료 산정을 달리한다. 이 제도의 허점 덕에 당진제철소는 해마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위험은 하청업체가 떠안고 원청은 보험료 감면 혜택을 챙기는 모순 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가 널리 퍼진 또 다른 원인이기도 하다.
당진제철소는 정규직보다 하청이나 외주업체 직원이 1.5배나 많다. 2017년 기준으로 당진제철소 정규직은 4천900여명인데 비해 하청·외주는 60여개 업체에 노동자 수는 7천300여명에 달한다. 현대제철 전체 노동자 가운데 하청·외주업체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52.8%)보다 훨씬 높다. 각각의 공정에 소속과 신분이 다른 노동자들이 얽혀서 일한다. 그러다 보니 소통 부족 등으로 산재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노동계의 진단이다.
위험한 공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는 하청·외주업체 소속이 대부분이어서 산재도 주로 이들 노동자에서 발생한다. 최근 12년간 산재로 숨진 36명 가운데 27명이 하청·외주 소속 노동자라는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지난 20일 이 제철소 컨베이어벨트 정비 작업 중 숨진 이 모(50) 씨도 외주업체 비정규직이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사고 사례와 판박이다. 2013년에는 하청업체 노동자 5명이 가스에 질식돼 숨지기도 했다. 2014년에 실시한 특별관리·감독에서는 1천100여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됐다.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치욕스러운 1위를 오랜 기간 지키고 있다. 매년 평균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스러져 간다.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관련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도급을 제한하는 '위험한 작업'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산재보험의 개별실적요율제도 대폭 손질해야 한다. 원청업체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의 산재도 원청에 포함해야 한다. 원청업체의 산업 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법을 강화하는 길만이 산재를 줄일 수 있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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