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일서 한인의 조직적인 독립운동 확인
주독 일본대사관이 사찰…"전단 등 비밀작업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박희석 교수 관련 자료 분석 및 입수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일제강점기에 독일에서 일본 측이 한인 유학생들의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사찰한 문서 내용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1920년대 중반 독일 수도 베를린 인근에서 한인 유학생들이 모의했던 장소의 사진도 처음으로 발견됐다.
1920년대에 독일의 한인 유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해온 정황이 기록으로 확인된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박희석 본대학 일본한국학과 교수가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1920년대 주독 일본대사관의 전문 등 일본 측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일본대사관은 베를린과 인근 소도시 포츠담의 한인 유학생들이 비밀모의를 하는 것으로 보고 사찰활동을 했다.
주독 일본대사가 1925년 2월 9일 일본 외무대신에게 발신한 전문에는 "베를린 근교에 있는 포츠담에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 있었다. 주소는 알테 루이지엔슈트라세 85번지이다. 겉으로는 그냥 함께 만나 노는 '조선인구락부'라 하지만, 지난번 관동대지진과 관련해 전단을 만드는 등 실제 어떤 비밀작업을 하는 곳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어떤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고 적혀 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같은 해 4월 20일 외무성에 보낸 전문에도 "베를린에서 약 20∼30분 정도 기차로 가면 있는 포츠담에 조선인이 경영하는 조선식 식당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토요일, 일요일에 조선인 학생들이 모여서 만나고 있다. 조선인학생구락부다"라고 쓰여 있었다.
일본 측이 사찰한 유학생 조직은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로 보인다. 이극로 이미륵 선생 등을 중심으로 1921년 1월 설립돼 1925년에는 최대 58명이 활동한 단체로 전해졌다.
일본 측 전문대로라면, 이들은 포츠담의 알테 루이지엔슈트라세 85번지 건물에서 주말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실제 1923년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후 같은 해 10월 23일 한인 유학생들은 베를린에서 집회를 열고, 일본의 한인 학살과 일제의 불법적인 식민지배를 비판했다.
알테 루이지엔슈트라세 85번지 건물은 이후 여러차례 주소명이 바뀌었다가 1978년 철거됐다.
박 교수는 철거 전인 1975년 역사가 오래된 이 거리의 풍경을 기록한 사진 작가를 통해 최근 해당 건물 사진을 입수했다.
박 교수는 "일본 측 기록을 볼 때 알테 루이지엔슈트라세 85번지에서 관동대지진 관련 집회에 대한 모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전문을 통해 유학생들이 조직적으로 독립을 위한 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유덕고려학우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베를린 집회를 제외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아 왔다.
일본 측은 한인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사찰해왔지만, 전문에 "아직 어떤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고 적힌 것을 고려할 때 직접적인 탄압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한인 유학생들이 대부분 중국 국적을 가진 뒤 독일로 넘어와 일본이 직접 조처를 할 경우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또 "1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국의 일원인 일본이 패전국 독일이 점령하던 중국 산둥반도 일대를 빼앗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독일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면서 "일본이 독일 측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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