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비밀모임·집회'…일제강점기 獨한인들의 독립운동

입력 2019-02-26 06:01  

'정기 비밀모임·집회'…일제강점기 獨한인들의 독립운동
유덕고려학우회 중심…이극로·이미륵 등 주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은 일제강점기 한인들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다.
현지언론에도 기록이 남지 않았고, 한국에도 관련 자료가 거의 없다.
귀국 후 조선어학회를 주도한 이극로 선생과 '압록강을 흐른다'를 쓴 이미륵 선생 등이 독일에서 벌인 활동의 일부 등이 입증된 정도다.
독일에 거주하는 민간인과 유학생들도 1920년대 한때 최대 80여 명 정도에 불과했던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탓에 한인들이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독일에서의 독립운동이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온 이유다.
최근에서야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말모이'의 실제 모델인 이극로 선생이 주목을 받고,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 과정을 통해 조명이 이뤄지면서 조직적인 독립운동이 이뤄진 사실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특히 박희석 독일 본대학 일본한국학과 교수는 최근 독립기념관에 소장된 일본 측 문서를 분석해 독일에서 일본 측이 한인들의 독립운동 활동을 사찰한 사실을 밝혀냈다.
더구나 박 교수는 한인들이 독립운동 모의를 했던 장소의 사진 자료도 확보해 연합뉴스에 제공했다.
사진은 1978년에 이 건물이 도로 확장공사로 철거되기 전인 1975년 촬영된 것으로, 촬영 당시 유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박 교수가 분석한 주독 일본대사관 등의 문건에 따르면, 일본 측은 베를린 인근 소도시 포츠담에 있는 건물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하는 한인들을 사찰했다.
문건 내용상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측의 한인 학살 등에 항의해 한인들이 같은 해 10월 베를린에서 벌인 시위도 이 건물에서 모의가 이뤄졌다.
베를린과 포츠담 한인들의 독립운동은 사실상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라는 단체 회원인 한인 유학생들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단체는 이극로, 이미륵 선생 등을 중심으로 1921년 1월 설립됐다.
1927년 베를린의 이극로, 이미륵 선생과 프랑스 파리의 김법린 선생이 일제강점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소민족압박반대대회에 참여한 것도 유덕고려학우회 및 포츠담의 한인 회합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으로 베를린에서 두부공장을 운영한 안봉근 선생도 이 단체의 배후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유덕고려학우회의 사무실은 베를린의 칸트 슈트라세 132번지에 있었고, 안 선생의 주소는 인근인 칸트 슈트라세 122번지였다.
박 교수는 "유덕고려학우회의 사무실 위치를 볼 때 유덕고려학우회가 안봉근 선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면서 "안 선생이 중국음식점에 조달하는 두부공장을 운영해 유덕고려학우회의 활동 자금을 지원했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 선생의 행적에 대해서는 학계뿐만 아니라 주독 한국대사관도 최근 추적하기 시작했으나, 아직 추가적인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고 1930년대 이후 행적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안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선생이 남긴 기록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우승 당일 저녁 주독 일본대사관의 축하연에 가지 않고 한인 축하연으로 향한 손 선생은 안 선생의 방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게 됐다.
안 선생의 두부공장 외에도 한인들이 한식당을 운영한 정황도 나타났다.
한인회합 사찰과 관련된 일본 측의 전문에 보면, 모임 장소 인근에 "조선인이 경영하는 조선식 식당이 있었다"고 나온다.
독일 한인들의 활동 기록은 1920년대 말부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의 화폐개혁 이후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유학생들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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