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수상한 마키 후미히코, TCS 포럼차 방한
"주변 사회와 어우러지는 건축 설계해야"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 '평화롭게 죽을 수 있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여러 일을 했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지요."
꼿꼿이 선 채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넘기던 노(老) 건축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마키 후미히코(91) 전 도쿄대 교수는 일본의 중요한 건축 이론인 메타볼리즘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그는 1993년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아흔이 넘었음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점이 그를 더 전설로 빛나게 한다. 교토국립근대미술관, 도쿄 스파이럴빌딩,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터에 지은 4WTC 등 굵직굵직한 대표작이 많다.
25일 서울 광화문 한중일협력사무국(TCS) 건축포럼 연사로 등장한 마키 전 교수가 PPT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작품은 일본 규슈(九州)의 작은 마을 나카쓰(中津)에 있는 '바람의 언덕' 이었다.
고즈넉한 공원처럼 보이는 '바람의 언덕' 정체는 화장장이다. 바깥 잔디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명상 시설 같은 내부에 들어선 이들은 죽음과 이별을 차분히 고찰할 시간을 얻는다. 어디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화장장은 그렇게 주변과 녹아든다.
이는 건축의 장소성, 즉 건물이 들어설 장소와의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마키 전 교수 철학을 보여준다. "화장장이라고 해도 시민이 즐거워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키 전 교수는 이날 별도로 진행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도 "완성된 건물은 수십 년 이상 그곳에 있는 만큼 사회와 어우러질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장소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 건물이 들어설 장소에 맞게, 어떠한 요소를 끄집어내서 건축물을 완성할 것인가는 해당 건축가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그는 건축물이 사회와 어우러진 또 다른 사례로 25년에 걸쳐 지어진 도쿄 힐사이드 테라스를 들었다. 주거·상업·사무 공간을 망라한 이곳은 가로수를 비롯한 주변 환경과 건물 관계를 세심히 고려해 설계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건축의 장소성은 '휴머니즘'과 이어진다. "현재 건축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 건축입니다. 건축과 그 장소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이를 염두에 둘 계획입니다."
이날 포럼은 '동아시아 현대건축과 로쿠스 디자인 포럼'을 주제로 개최됐다.
마키 전 교수와 한국의 김종성·이대준 건축가, 중국의 장융화 건축가 등 참석자들은 땅 위에 지어지는 건물보다 터(locus)를 더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유체계를 분석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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