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핵합의 성사 주역' 이란 외무장관 전격 사의(종합)

입력 2019-02-26 16:21   수정 2019-02-26 16:43

'서방과 핵합의 성사 주역' 이란 외무장관 전격 사의(종합)
로하니 정부 '성과' 핵합의에 큰 타격 전망
美 핵합의 탈퇴 뒤 강경 보수파 압박 거세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2015년 서방과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성사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밤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자리프 장관은 이날 밤 11시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부족했던 점과 무능력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지난 67개월간 이란 국민과 정부 부처가 나에게 베푼 아량에 깊이 감사한다"는 글을 올려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통신은 그가 26일 외무부 직원들에게 "(내가 떠나도) 이란을 지키고 강성하게 하는 임무를 계속해 달라. 내 사임으로 외무부가 외교 관계를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었으면 한다. 모두에 감사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자리프 장관은 2013년 8월부터 로하니 정권의 외교 업무를 총괄했다. 중도·개혁파의 지지로 정권을 교체한 로하니 대통령은 국방·안보 분야는 이전 보수 정권을 계승했지만 외교 분야는 자신의 정책 방향에 맞춰 '물갈이'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취임 뒤 임명한 자리프 장관을 핵협상 테이블에 내세워 서방과 관계를 개선해 경제난을 해결하는 데 주력했다.
서방과 대화를 반대하는 국내 보수 강경파의 비판 속에서도 자리프 장관이 정권 초부터 5년여간 유임된 만큼 그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은 로하니 정부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이란 국내외에서 핵합의의 상징과 같았던 그가 실제로 퇴장하게 되면 핵합의의 존속에도 부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에 맞서 핵합의를 유지하는 방안을 놓고 유럽과 협상하는 자리를 이란의 강경 보수파가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리프 장관의 사의 표명 직후 트위터에 "로하니 대통령이 그의 사임을 수락했다는 보도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런데도 로하니 대통령의 사의를 받아들였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자리프 장관은 25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해 정부 고위인사들을 만났을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장 헤샤마톨라 팔라하트피셰 의원은 이란 국영통신에 "위원회에서 자리프 장관의 사의 표명을 26일 오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자리프 장관은 2013년부터 2년간 이어진 이란 핵협상 과정에서 미국 조기유학 시절 익힌 유창한 영어와 경직되지 않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란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받았다.
20대 초반부터 외교가에 입문한 정통 외교관 출신인 그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외무장관을 상대하면서 핵합의를 성공적으로 끌어냈다. 핵합의 타결 즈음에는 유력 대선 주자로도 꼽혔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외무장관'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외국을 부지런히 방문해 이란의 입장을 강력하고 분명히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지만 국내에서는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미국이 작년 5월 합의를 뒤집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자국 내 강경파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핵합의를 유지하는 방안으로 유럽연합(EU)이 이란과 협상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양측의 교역을 전담하는 특수목적법인(인스텍스)을 설립했지만, 이란 최고지도자가 "유럽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졌다.
또 최근에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 가입하는 문제를 놓고 이에 반대하는 강경 보수파와 갈등을 빚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자리프 장관의 사임 소식과 관련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자리프의 사임 소식을 들었다. 이것이 확정된 것인지 두고 볼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어 "자리프와 로하니는 부패한 종교 마피아의 최전선에 있던 인물"이라면서 "우리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이란 정권은 정상 국가처럼 행동해야 하고 자국민을 존중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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