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암장돼 묘비도 없이 많은 사람의 발에 짓밟혔다" 설명문
(가나자와=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일본 도쿄(東京)에서 신칸센(新幹線)으로 3시간 안팎 걸리는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교외에는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를 기리는 '암장지적'(暗葬之跡) 비석이 세워진 장소가 있다.
이곳은 윤봉길 의사가 암매장됐던 흔적을 남기고자 1992년 12월 19일 조성됐다. 12월 19일은 윤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을 맞아 일본군이 중국 상하이(上海)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상하이 점령 기념식을 열자 일본군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는 민족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고 한중 양국의 항일연대에도 기여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같은 해 5월 일본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1월 18일 오사카(大阪) 육군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2월 19일 가나자와 일본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총살을 당했다.
가나자와에 있는 '윤봉길 의사 암장지 보존회'는 당시 윤 의사의 유해가 일제에 의해 인근 육군묘지에서 벗어난 언덕 밑으로, 사람이 드물게 왕래하고 쓰레기 하치장으로 가는 통로에 묻혀 있었다고 설명한다.
일제는 암장지가 묘지임을 알지 못하도록 아예 묘비나 묘표를 세우지 않았고, 봉분이 없는 평토장 형태로 만들어 행인들이 함부로 밟고 지나다니도록 방치했다고 한다.
당시 윤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임시정부 유해발굴단이 조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1946년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지난 26일 현지에서 만난 윤봉길 의사 암장지 보존회의 박현태(75) 회장과 함께 암장지에 가기에 앞서 가나자와역에서 차량으로 20분가량 떨어진 육상자위대 미쓰코지야마(三小牛山) 연습장 인근을 먼저 찾았다.
현재는 출입이 불가능한 자위대 연습장 부근의 어느 지점에서인가 윤 의사의 총살형이 집행됐을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87년 전 비통한 역사의 한 장면을 상상하며 순국 추정지로부터 멀지 않은 윤 의사의 암장지로 향했다.
노다야마(野田山) 공동묘지의 한쪽 길로 접어들자 계단이 놓인 길옆에 '윤봉길 의사 암장지적'이라 쓰인 비석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윤 의사를 기리는 꽃이 놓여 있었다.
암장지 보존회의 박 회장은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이곳을 돌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 회장은 숙부인 박인조 초대회장이 2009년 사망한 이후 보존회를 맡았다.
박 회장은 "처음 이곳이 조성될 때 우익의 반대도 있었다"며 "그러나 당시 250만엔가량(약 2천500만원)이 모금되면서 이곳이 조성됐고 2008년에는 시(市)로부터 암장지에 대한 영구임대 허가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암장지적비의 왼쪽 옆에는 윤 의사에 대해 "장렬한 24세 6개월의 짧은 생애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체(유해)는 형법의 절차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암장돼 묘비도 없이 많은 사람의 발에 짓밟혔다" 등으로 설명한 안내판도 있었다.
안내판 아래에는 설명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며 박 회장의 연락처를 적은 작은 메모판을 놓아뒀다.
암장지 근처에는 1992년 4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윤 의사 의거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세운 순국기념비도 있다.
설명을 마친 박 회장은 "방문객들에게 이곳이 윤 의사의 정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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