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이후 출세가도…첫 법무장관으로 통진당 해산 성과로 내세워
朴탄핵, 黃인생 변곡점…대통령 권한대행 맡으며 보수주자로 부상
(고양=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7일 제1야당의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지 43일만이다.
황 신임 대표는 공안검사 출신이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검찰청 공안3과장·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을 역임하는 등 검찰 내 대표적인 공안 라인을 걸어왔다.
황 대표의 강력한 보수 논리는 공안검사 시절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공안 경력은 노무현정부에서 약점으로 작용했다.
황 대표는 검찰 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지내고도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했고,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동기 중에 늦깎이로 검사장이 됐다.
박근혜정부는 황 대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초대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에 이르기까지 '출세가도'를 달린 것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끌어냈고,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헌재 심판 마지막 기일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작은 개미굴이 둑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통합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이라고 생각해 박 전 대통령에게 해산을 건의했다"면서 통진당 해산을 법무부 장관 시절 최대 업적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통진당 출신 인사 등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헌법의 이름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황 대표는 2015년 6월 박근혜정부의 세 번째 총리로 취임했다. 당시 황 총리는 58세로, 노무현정부 시절 한덕수 국무총리 이후 8년 만에 나온 50대 총리였다.
총리 취임 과정도 상대적으로 순조로웠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총리 공백을 장기화할 수 없다는 공감대에 따라 내정 28일 만에 총리로 취임했다.
황 대표는 '책임총리'보다는 '관리형 총리'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공안검사 출신답게 자신의 색깔은 분명히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 교과서 논란이다. 그는 2015년 11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보에 앞장섰고 이 때문에 진보 진영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진영 와해의 원인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황 대표의 삶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황 대표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국정운영의 1인자가 된 것이다.
이 기간 황 대표는 '대통령 공백'으로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국정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보수진영 내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황 대표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 유력주자로 올라섰지만,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도 황 대표의 주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황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진영 대선주자 선두를 기록하며 보수의 대안으로 이름을 올렸고, 이번 전대에서 제1야당의 대표가 되면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실험에 나서게 됐다.
▲ 서울(62) ▲ 경기고 ▲ 성균관대 법학과 ▲ 대검 공안3과장·공안1과장 ▲ 서울지검 공안2부장 ▲ 서울중앙지검 2차장 ▲ 성남지청장 ▲ 창원지검 검사장 ▲ 부산고검장 ▲ 법무부 장관 ▲ 국무총리 ▲ 대통령 권한대행
한국당 새 대표에 황교안…최고위원에 조경태ㆍ정미경ㆍ김순례ㆍ김광림ㆍ신보라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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